[코펜하겐 도시재생] 위기의 도시, 친환경 미래 도시로 거듭나다

지난 4월 코펜하겐에서 쓰기 시작한 연재를 서울에서 매듭 짓는다.

지난 세 달 동안 어반 인사이트라는 꼭지로 어반플레이 아는동네에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을 소개했다. 한국에는 아직 낯선 도시이기에 간략한 역사부터 짚고, 주목할 만한 도시재생 사업을 3건만 추려 전했다. 지금 코펜하겐의 사상적 기틀을 만든 건축 그룹 겔의 이야기도 짚었다.

모든 사례를 전할 수는 없기에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코펜하겐이라는 도시를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든 비결을 전하려 노력했다. 한국적 ‘도시재생’이라는 맥락에서 다소 멀어 의아한 사례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낯섦 역시 전달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배울 점을 담고 싶었다.

코펜하겐 전경(코펜하겐관광청 제공)
코펜하겐 전경(코펜하겐관광청 제공)

스키슬로프를 얹은 열병합발전소 아마게르 바케(Amager Bakke)는 첨단 기술에 획기적인 발상을 덧입혀 도시에 필수적인 혐오 시설을 시민이 기꺼이 찾게 만들었다. 다양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공원 수페르킬렌(Superkilen)은 대단한 기술이나 거대한 예산 없이도 이민자 밀집 빈민가를 다양성의 산실로 탈바꿈시켰다. 공공 시설을 만드는 과정에 주민이 본질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마련한 것이 주효했다. 수상 기숙사 어반 리거(Urban Rigger)는 주택 용지 부족이라는 성장 도시의 근본적 한계를 뛰어 넘는 길을 제시했다.

위기를 딛고 일어난 도시, 코펜하겐

이렇게 다채로운 도시재생 사업이 코펜하겐에서 펼쳐진 까닭은 위기감이다. 30여 년 전 코펜하겐은 망해 가는 도시였다. 코펜하겐은 도심이 기피 지역으로 전락하며 도심공동화가 진행됐다. 1970년대에는 매년 1만2천 명이 도시를 떠나는 형편이었다. 제조업이 무너지자 시 재정도 압박 받았다. 매년 8500억 원에 달하는 적자 때문에 시 정부가 대규모 토목 공사를 주도해 경기를 부양할 힘도 없었다. 코펜하겐시는 한 나라의 수도로서 지위를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간절함 속에 답은 있었다. 시 재정이 바닥난 터라 기간시설을 확충하며 도시를 재건할 수 없던 코펜하겐시는 가장 효율적으로 사람이 살 만한 도시 공간을 만들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았다. 전후 독일에서 유행하던 보행자 전용도로라는 개념을 시내 번화가인 스트뢰게트(Strøget)에 도입했다. 주민과 상인의 반발을 무릅쓴 도전은 성공을 거뒀다. 스트뢰에의 성공 사례를 이론으로 정리해 ‘거리를 공중이 함께 누리는 공간으로 꾸며야 한다’고 주장한 건축가 얀 겔(Jan Gehl)을 중용해 도시 계획을 세웠다. 큰 돈을 들여 도심을 재건하지 않고도 삶의 질을 끌어 올릴 묘수였다.

코펜하겐 중심가 스트뢰게트 아마게르 공원(안상욱 촬영)
코펜하겐 중심가 스트뢰게트(Strøget) 아마게르 공원(Amagertorv)(안상욱 촬영)

민-관이 결합한 코펜하겐 모델

하지만 대규모 토건 사업 없이 도시 규모로 환경을 개선하는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코펜하겐 시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시 정부가 소유한 공공토지를, 정부가 소유하되 민간 기업처럼 운영하는 공기업으로 이전했다. 1980년대 말 태어난 도시항만개발공사(By og Havn)가 공기업의 대표적 예다. 도시항만개발공사는 공공자산을 민간기업처럼 십분 활용해 수익을 창출했고, 그 돈은 코펜하겐을 재건하는데 긴요하게 쓰였다. 민-관의 장점을 교묘히 접목한 일명 ‘코펜하겐 모델’이 탄생했다.

먼저 공공자산의 가치를 시장 기준에 맞춰 정확히 평가했다. 공공자산은 종종 여러 지자체나 기관이 함께 소유한다. 코펜하겐시는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를 사전에 조율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까지도 힘을 모은 공기업을 꾸렸다. 공기업은 마치 민간기업처럼 정치적으로 독립한채 운영됐다. 덕분에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장기 목표를 지키면서도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제조업이 무너지며 버림 받은 항만과 쓰레기매립지 같이 땅을 거주지와 상업 지구로 개발하도록 용도를 변경(rezoning)했다. 앞서 소개한 친환경 열병합발전소 아마게르바케 역시 코펜하겐과 인근 지자체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기업 ARC가 운영한다. 토지는 코펜하겐시가 소유하고 ARC에 장기 임대한다.

재정을 확보한 시 정부는 중앙정부와 힘을 모아 대규모 기간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바다를 건너 덴마크와 스웨덴을 연결하는 외레순 다리(Øresundsbron)를 지었다. 코펜하겐국제공항(Københavns Lufthavn)을 확장했다. 지하철 공사도 시작했다.

코펜하겐의 아담한 스카이라인 너머로 덴마크와 스웨덴을 잇는 외레순 대교가 보인다(코펜하겐관광청 제공)
코펜하겐의 아담한 스카이라인 너머로 덴마크와 스웨덴을 잇는 외레순 대교가 보인다(코펜하겐관광청 제공)

문화와 교육 부문에도 과감히 투자했다. 왕립오페라하우스, 덴마크국립극장 등을 새로 지었다. 국립도서관을 확장했다. 옛 군사시설은 건축학교로 탈바꿈시켰다. 코펜하겐대학교도 새 건물을 얻었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93년 겨우 부도를 면하고 중앙정부 손에 휘둘려야 했던 코펜하겐 시는 2008년 <모노클>이 선정한 가장 살만한 도시에 꼽혔다. 아름답고 볼거리 가득한 항구도시는 세계적 수준의 대중교통망을 갖추고, 친환경 에너지로 운영되는 주거 및 상업 건물 수천 동을 거느렸다.

미국 사회과학연구기관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e)는 ‘코펜하겐 모델’이 시장의 작동원리와 효율성을 공공의 이해를 절묘하게 조합했다며, 덕분에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이 정부가 결정한 방향에 궤를 맞추면서도 더 효율적으로 수행됐다고 평가했다. 더 나아가 세금 인상 없이도 기간 시설을 확충할 만큼 큰 사업을 진행해낸 코펜하겐 모델을 미국 도시재생 사업에 접목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에서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2025년 탄소중립도시를 향해

코펜하겐도 처음부터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뚝심으로 밀어부친 것은 아니다. 때를 놓치기 직전에야 위기를 느끼고 숨가쁘게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30년 간 이어진 장애물 달리기가 지금처럼 살기 좋은 코펜하겐을 만든 셈이다.
1990년대까지만해도 코펜하겐은 장기 도시개발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민간 자금을 유치하기 어려웠다.

이 문제를 인식한 코펜하겐시는 1989년 첫 지역 개발 계획을 내놓았다. 그리고 2000년에는 수변 지구 개발 계획을 세웠다. 2001년에는 첫 건축 정책을 발족했다. 2011년에는 장기 자전거 진흥 계획을 내놓았다.

앞선 도시 개발 계획을 도입하고 적용하며 도시의 성장을 도모하는데 장기 계획이 중요함을 깨달은 코펜하겐시는 2015년 한층 담대한 도전에 나섰다. 2025년까지 코펜하겐에서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탄소중립도시 선언은 코펜하겐 시정부의 장기 목표이면서 전략적 시장 육성 계획이다. 코펜하겐 시민이 세계에서 가장 청정한 도시 환경을 누리는 와중에, 전 세계 전문가가 코펜하겐에 모여 친환경 에너지, 환경 정화 기술을 연구하고 시범 적용한다.

코펜하겐시의 도시 개발 계획은 단순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이 아니다.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가량을 책임지는 코펜하겐이 앞서 길을 열면, 그 뒤를 덴마크가 따라온다. 덴마크 중앙정부는 코펜하겐보다 25년 뒤인 2050년까지 탄소중립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1973년 석유 파동을 계기로 풍력과 태양열 등 친환경 에너지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해 온 덴마크는 이미 중간 목표를 초과달성하며 청정 에너지 국가로 거듭나는 중이다. 코펜하겐시에서 거둔 정책적 성공은 곧 덴마크 전역에 확산되며 국가 성장을 이끌고 있다.

장기 도시 계획과 정책 일관성

코펜하겐시의 도시 개발 계획이 장기적으로 추진될 수 있던 까닭으로 정책 일관성을 빼 놓으면 안 된다. 덴마크는 6개 주요 정당이 주축이 돼 연립 정부를 구성한다. 1901년 이후 특정 정당이 의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적이 없다. 연립 여당이 총리를 선출한다.

권력을 특정 정당이 독과점하지 않는 것은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코펜하겐시는 십수년 전 세운 장기 계획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다. 2015년 총선에서 우파 연립정부가 정권을 잡고도 코펜하겐이 나아가는 길이 올곧아 보이는 까닭이다.

남은 이야기

시간과 자원이 부족해 소개하지 못한 사례가 코펜하겐에 아직 많다. 자료 조사 단계에서 멈춘 사례지만, 호기심 왕성한 독자는 직접 찾아볼 수 있도록 아래 목록을 공유한다. 다음 기회에는 아래 프로젝트도 소개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코펜하겐 도시재생 연재에 마침표를 찍는다.

제미니 레지던스(Gemini Residence) 내부. 두 곡물 저장고를 기숙사로 탈바꿈했다(코펜하겐관광청 제공)
제미니 레지던스(Gemini Residence) 내부. 두 곡물 저장고를 기숙사로 탈바꿈했다(코펜하겐관광청 제공)

제미니 레지던스(Gemini Residence)는 용도를 잃은 곡물 저장고를 거주 공간으로 되살린 곳이다. 원통형 구조물이 그대로 주거 공간으로 거듭난 모습이 독특하다.

집단 거주단지를 단독주택처럼 활용하는 공간 기획이 절묘한 8하우스(8tallet)(코펜하겐관광청 제공)
집단 거주단지를 단독주택처럼 활용하는 공간 기획이 절묘한 8하우스(8tallet)(코펜하겐관광청 제공)

8하우스(8 Tallet)는 공동주택을 마치 단독주택단지처럼 만든 곳이다. 경사로 하나만 따라 걸으면 모든 층을 오르내리며 이웃과 마주치고, 중정에서 바베큐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생긴다. 지금도 건축사 BIG은 8하우스에서 1년에 1~2번씩 바베큐 파티를 개최한다.

파피뢰엔(코펜하겐관광청 제공)
파피뢰엔(코펜하겐관광청 제공)

파피뢰엔(PapirØen)은 조선소가 떠나고 버림 받은 거대한 공업 부지였다. 54개 스타트업이 뭉쳐 세계 거리 음식과 창업 허브를 꾸렸다. 덕분에 빈 인공섬은 코펜하겐 도심에서 10분 만에 닿을 수 있는 놀이터로 거듭났다.

코펜하겐빌리지 제공
코펜하겐빌리지 제공

코펜하겐빌리지(CPH Village)는 폐콘테이너를 재활용한 주택을 기본 모듈로, 지구 계획이 아직 실시되지 않은 도심 유휴지에 이동 주택단지를 조성해 저렴한 주거지를 공급하며, 빈 땅에 생기와 가치를 불어 넣는 프로젝트다.

코펜하겐 신도시 지구 노르하운에서 가장 유명한 친환경 건축물 UN시티(코펜하겐관광청 제공)
코펜하겐 신도시 지구 노르하운에서 가장 유명한 친환경 건축물 UN시티(코펜하겐관광청 제공)

노르하운(Nordhavn)은 코펜하겐의 신도시 개발 지구 중 한 곳이다. 이름처럼 도심 북쪽에 있던 항구를 첨단 수변 도시로 만들었다. 지하철 공사 중 퍼낸 흙을 덮어 버려진 항구에 땅을 1m씩 돋우고, 토지를 넓혔다. 그리고 지하철 역이 개통하며 생긴 경제적 이익을 공공이 환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칼스버그 지구 칼스버그 양조장 정문에 코끼리 동상(코펜하겐 관광청 제공)
칼스버그 지구 칼스버그 양조장 정문에 코끼리 동상(코펜하겐 관광청 제공)

칼스버그 시티(Carlsberg Byen)는 덴마크 유명 맥주 브랜드 칼스버그의 고향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코펜하겐 중앙역에 가까운 곳에 있는 옛 칼스버그 양조장과 인근 지역을 도심 종합 지구로 꾸민다. 코펜하겐 시내에서 보기 드문 고층 빌딩도 9동을 세워 상업 건물과, 거주 시설와 업무 시설로 활용한다.

[연재] 덴마크 코펜하겐 도시 재생

  1. [인트로] 천년고도, 행복 도시로 거듭나다
  2. 바다 위에 콘테이너로 지은 학생 기숙사, 어반 리거
  3. 쓰레기 태우는 발전소를 관광 명소로, 아마게르 바케
  4. “이민자를 이웃으로” 주민이 직접 꾸린 다문화 공원, 수페르킬렌
  5.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그리다, 겔
  6. [인터뷰] “살기 좋은 도시 만들려면 지속가능한 삶을 가장 쉬운 생활 양식으로 만들라” – 겔 파트너 디렉터 크리스티안 빌라센
  7. [아웃트로] 위기의 도시, 친환경 미래 도시로 거듭나다


이 콘텐츠는 도시 콘텐츠 스타트업 어반플레이가 후원하고 덴마크 전문 미디어 NAKED DENMARK가 제작해 양쪽 매체에 공동 게재합니다. 덴마크 도시 재생 연재는 어반플레이 미디어 아는동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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