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도시재생] “살기 좋은 도시 만들려면 지속가능한 삶을 가장 쉬운 생활 양식으로 만들라”

크리스티안 빌라센(Kristian Skovbakke Villadsen) 겔 파트너 디렉터 (안상욱 촬영)

“인간은 항상 옳은 일만 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우리 대다수는 채식주의자나 유기농주의자가 아니죠. 자전거 애호가도 아닙니다. 대다수 인간은 쉽고 빠르고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호하기 때문이죠.

코펜하겐이 성공한 이유는 생활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하며 건강한 일을 가장 쉽고 빠르고 편리한 선택지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코펜하겐 인구 45%가 자전거로 통근해요. 이들한테 ‘왜 자전거를 타냐’고 물으면 환경에 좋다거나 저렴하다거나 운동이 되기 때문이라고 답하지 않습니다. 63%는 코펜하겐에서 자전거로 통근하는 게 ‘쉽고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죠.

그러니까 살기 좋은,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고 싶다면 그런 선택지를 가장 손쉬운 생활 양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크리스티안 빌라센(Kristian Skovbakke Villadsen) 겔 파트너 디렉터 (안상욱 촬영)

크리스티안 빌라센(Kristian Skovbakke Villadsen) 겔 파트너 디렉터 (안상욱 촬영)

크리스티안 빌라센(Kristian Skovbakke Villadsen) 겔 파트너 디렉터가 말했다. 코펜하겐이 지금처럼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난 비결을 물었는데, 무척 현실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반가웠다. ‘사람을 위한 도시를 만든다'(making cities for people)는 슬로건을 반세기 넘게 실천해 온 도시계획 컨설팅 그룹 겔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려고 코펜하겐 겔(Gehl) 사무실을 방문한 지난 4월이었다. 지난 10여 년 간 여러 아시아 도시에 얀 겔의 사상을 구현해 온 크리스티안 빌라센 파트너 디렉터를 만나 서울 등 한국 도시도 코펜하겐처럼 행복한 도시로 거듭날 방안을 물었다.

  • 일자: 2018년 4월23일 오전 10시
  • 장소: 덴마크 코펜하겐 겔(Gehl) 사무실
  • 참석: 크리스티안 빌라센(Kristian Skovbakke Villadsen) 겔 파트너 디렉터, 안상욱 NAKED DENMARK 편집장, 장진영

코펜하겐에서 개인적으로 삶의 질을 가장 높여주는 요소를 꼽자면?

저에게 코펜하겐이 살기 좋은 도시인 이유는 안전하고 행복하며 이웃과 소통하고 영감을 받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는 15분 도시에 삽니다. 세계를 누비며 일하지만 가족이 있는 코펜하겐으로 돌아오면, 일상에 모든 일을 자전거로 15분 안에 닿는 곳에서 처리할 수 있죠. 직장에서 집까지 자전거로 15분이면 갑니다. 그 사이에 아이 학교, 놀이터, 수영장, 공원, 슈퍼마켓, 세탁소, 도서관이 모두 있어요. 도시의 모든 기능이 망라돼 있습니다. 내가 매일 벌어질 일을 완벽하게 계획할 수는 없지만, 코펜하겐이 잘 작동하는 덕분에 하루 안에 내가 해야 할 일을 가뿐히 처리할 수 있지요.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있고요.

자전거 타는 코펜하겐 시민(안상욱 촬영)

자전거 타는 코펜하겐 시민(안상욱 촬영)

 

한국은 서울에만 1000만 명이 삽니다. 덴마크 인구는 전국을 통틀어도 560만 명뿐이죠. 서울과 코펜하겐에서 살기 좋은 도시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을 듯한데요.

맞습니다. 거대 도시와 코펜하겐 같은 아담한 도시는 다릅니다. 코펜하겐은 수도권을 다 쳐도 150만 명이 삽니다. 도시 현장 연구소로서 완벽한 환경이죠. 또 살기 좋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정치적 의지도 충만합니다. 테스트베드로 훌륭하죠. 1000만 명이 사는 서울이나 2500만 명이 사는 상하이 같은 도시랑은 다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같아요. 바로 우리 말이죠. 도시에 사는 사람은 같습니다. 키도 눈높이도, 눈높이에서 감각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도시에서 혁신을 낳아요. 만남이 많아야 혁신도 증가합니다. 그렇기에 비록 환경과 문화는 많이 다르더라도, 클라이언트는 우리에게 같은 것을 주문합니다. 바로 인간(human-being)이요.

코펜하겐 번화가 스트뢰게트(Strøget) (안상욱 촬영)

코펜하겐 번화가 스트뢰게트(Strøget) (안상욱 촬영)

 

코펜하겐은 작은 도시라 15분 도시를 구현할 수 있겠지만, 서울은 그렇게 만들 수 없지 않나요? 서울 직장인 평균 출퇴근 시간은 1시간 반이 넘거든요.

저는 그게 도시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도시 공간에서 기능성이 얼마나 조화로운지가 핵심입니다.

중국 한 신도시 개발지구에서 연구했습니다. 초고층 빌딩이 빽빽이 들이찬 곳인데, 밀집도(density)는 5층 건물뿐인 코펜하겐 수도권과 같았어요. 우리는 초고층 빌딩을 5~6개층씩 서로 다른 블록으로 묶어 기능을 다시 배치했습니다. 코펜하겐에서 수평적으로 구성된 기능적 다양성을 수직 공간에 구현한 거죠. 그러니 도시에 네트워크가 형성됐습니다. 코펜하겐 같은 쾌적한 밀도를 누리면서 남는 공간도 확보했어요. 그러면서도 주민은 학교나 지하철역, 공원 지근거리에 살게 됐죠.

전후에 나온 국가 단위 건축 규제는 지금 우리가 꿈꾸는 도시 환경을 구축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만들어진 규제와 건축물을 재료 삼아 일합니다.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죠. 아직도 많은 아시아 도시는 효율적인 도시계획을 이유로 조감도를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공간을 재단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구조물이 아니라 구조물 사이 공간에 존재합니다. 차를 위한 도로는 매끈하게 디자인해뒀지만,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나 학교, 상점으로 가는 길은 누구도 신경쓰지 않아요. 코펜하겐은 정반대입니다. 코펜하겐에는 건물 사이에 일상의 질을 결정 짓는 요소를 구축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요.

석양 지는 코펜하겐 수변 공원(안상욱 촬영)

석양 지는 코펜하겐 수변 공원(안상욱 촬영)

 

도시계획 컨설팅이라는 업무 특성상 정부 기관이나 정치인과 협업해야 할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요. 이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나요?

시범 사업(pilot projects)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사업 전후를 비교해 성과를 명확히 제시하죠.

코펜하겐 뇌레브로대로(Nørrbrogade) 사례를 살펴보시죠. 시내로 들어가는 주요 도로 중 한 곳입니다. 여기서 이용자 행태 조사를 벌였더니 대다수 사람이 걷거나,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타는데도 대부분 도로 공간은 차량에 배정됐습니다.

시범 사업으로 이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만들고, 볕이 잘 드는 곳으로 버스 정거장을 옮겼어요. 임시 조치였지만 차량 통행량은 60% 감소하고, 보행자는 60% 증가했으며, 자전거 통행량도 45% 늘었죠. 이 결과를 근거로 영구적인 솔루션을 마련했습니다.

뇌레브로대로 시범 사업은 근처 부동산 시장에도 훈풍을 불어넣었어요. 주변 상점 매출이 올랐습니다. 빈 가게는 줄었고요. 예상할 수 있던 파급효과였으나 시범사업을 수행하고 실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코펜하겐 뇌레브로대로(Nørrebrogade) (안상욱 촬영)

코펜하겐 뇌레브로대로(Nørrebrogade) (안상욱 촬영)

미국 뉴욕시 교통국과 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맨해튼 인구 30%는 노인이나 아동인데, 거리를 다니는 사람 중 노인과 아동은 10%뿐이었습니다. 노약자에게 맨해튼 도로가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죠. 뉴욕 도로도 통행하는 사람 중 보행자가 3분의2였지만, 도로 공간 3분의2는 운전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시범 사업으로 브로드웨이를 타임스퀘어까지 임시 폐쇄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했습니다. 보행자가 2배로 늘었죠. 놀라운 점은 교통 흐름도 개선됐다는 겁니다. 도로가 훨씬 덜 복잡하니 운전하기도 좋아졌죠. 이 프로그램은 이제 뉴욕시 자체 사업으로 통합됐습니다.

뉴욕 타임스퀘어 도로 정비사업 전후 (뉴욕 교통국 제공)

뉴욕 타임스퀘어 도로 정비사업 전후 (뉴욕 교통국 제공)

 

아시아와 서방 국가와 일하는 방식이 꽤 다를 것 같은데요.

당연하죠. 의사결정과정이 다릅니다.

아시아 도시는 무척 기능주의적 관점으로 설계됩니다. 교통 당국, 주거 당국, 환경 당국이 각자 큰 권한을 갖고 목소리를 냅니다. 권력 구조에 따라 도로, 주거지구, 녹지를 전혀 별개 공간으로 조성하죠. 이들을 한 데 모아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아시아에서 만난 가장 큰 숙제입니다.

아시아에서 수많은 워크숍과 강연을 합니다. 프로젝트 극초반부터 교통경찰부터 시장까지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둘러앉아 목적의식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요.

지난 10년 사이 아시아에 중산층이 무척 빠르게 늘어나며 삶의 질을 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입니다. 출퇴근에 2시간을 보내기 싫고, 삶이 없는 교외 지역으로 떠나기로 싫어합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는 얘기입니다.

도시계획이 재미있는 까닭은 우리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의 삶을 틀짓기 때문입니다. 도시계획의 결과는 모든 이가 매일 경험하는 삶의 질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죠. 아시아에서도 이런 의식이 커지고 있어 다행입니다.

 

[연재] 덴마크 코펜하겐 도시 재생

  1. [인트로] 천년고도, 행복 도시로 거듭나다
  2. 바다 위에 콘테이너로 지은 학생 기숙사, 어반 리거
  3. 쓰레기 태우는 발전소를 관광 명소로, 아마게르 바케
  4. “이민자를 이웃으로” 주민이 직접 꾸린 다문화 공원, 수페르킬렌
  5.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그리다, 겔
  6. [인터뷰] “살기 좋은 도시 만들려면 지속가능한 삶을 가장 쉬운 생활 양식으로 만들라” – 겔 파트너 디렉터 크리스티안 빌라센
  7. [아웃트로] 위기의 도시, 친환경 미래 도시로 거듭나다

이 콘텐츠는 도시 콘텐츠 스타트업 어반플레이가 후원하고 덴마크 전문 미디어 NAKED DENMARK가 제작해 양쪽 매체에 공동 게재합니다. 덴마크 도시 재생 연재는 어반플레이 미디어 아는동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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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계에서 일하다 행복의 비결을 찾고자 덴마크로 떠났습니다. 코펜하겐에서 1년 동안 살았습니다. 살다 보니 덴마크라는 나라가 지닌 매력을 시나브로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을 한국에도 전하고 싶어 NAKED DENMARK를 창업했습니다. 저널리즘을 떠받치는 먹고사니즘을 궁리합니다. 스타트업과 사회복지제도에 관심 많습니다. 쉽고 친절하게 쓰겠습니다. 이메일 andersen@nakeddenmark.com / 페이스북 fb.com/nuribit0 / 트위터 @nuri_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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