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논란 속에 ‘부르카 금지법’ 시행

덴마크가 8월1일부로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복장을 착용하지 못하게 한 이른바 ‘부르카 금지법’을 시행했다.
같은날 오후 코펜하겐과 오후스 시내에서는 부르카 금지법에 반대하는 시민이 항의 집회를 열었다. 코펜하겐에서만 300여 명이 모여 수페르킬렌(Superkillen)부터 코펜하겐지방경찰청이 있는 벨라회이(Bellahøj)까지 행진했다. 시위대는 얼굴을 모두 가린 온갖 가면을 쓰고 나와 부르카 금지법에 반대하는 뜻을 표현했다.

허나 법 시행 이틀 뒤인 8월3일, 부르카 금지법 위반으로 첫 단속 사례가 나타났다. 경찰은 니캅을 쓴 28세 여성이 덴마크에서 최초로 부르카 금지법 위반으로 벌금 1천 크로네(17만5000원)를 부과했다.
 

부르카 금지법이란?

일명 ‘부르카 금지법’은 공공장소에서 얼굴 대부분을 가리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다. 공식 명칭은 가림 금지법(tildækningsforbuddet∙ban on covering)이다.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행위가 덴마크 사회의 규범을 어긴다는 명분으로 제안됐다. 덴마크 국회는 5월31일 이 법안을 75대 30으로 의결했다.
 

반복 위반 시 최대 벌금 175만 원

합당한 이유(Anerkendelsesværdigt formål) 없이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고 다니면 경찰관이 즉결 처분으로 벌금을 물릴 수 있다. 합당한 이유는 추워서 스카프로 얼굴을 동여매거나, 파티에 가는 길에 가면을 쓰는 등이다. 위반 사실을 적발한 경관이 판단해 현장에서 처분한다.
벌금은 1회 위반에 1천 크로네(17만5000원)다. 4회 이상 위반을 반복하면 최대 1만 크로네(175만 원)까지 오른다. 극우정당인 덴마크인민당(Dansk Folkeparti)은 상시 위반자를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 의견은 국회 논의 중에 기각됐다.
 

왜 부르카 금지법인가?

명목상 가림 금지법은 이슬람 전통복장 뿐 아니라 가짜 수염, 마스크, 후드 등 얼굴을 가리는 모든 복장이 단속 대상이다. 그런데 왜 이 법이 부르카 금지법이라고 불릴까. 이슬람 전통 복장을 입는 무슬림 여성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슬람 문화는 여성과 남성의 접촉을 제한한다. 강경 무슬림 문화권에서는 아직도 여성이 가족 외 남성에게 얼굴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무슬림 여성은 얼굴이나 몸을 가리는 전통 복장을 입는다. 무슬림 여성 의복은 눈만 내놓고 온 몸을 가리는 부르카(burqa)부터 얼굴에만 쓰는 베일 니캅(niqab)까지 다양하다. 터키 같이 서구화된 이슬람권은 머리에 두건만 두르고 얼굴은 내보이는 히잡(hijab)만 입는 이가 많다. 덴마크에서는 150~200명이 니캅을 입는다는 조사 결과가 2010년에 마지막으로 나왔다.
 

“공공 안녕 해치는 여성 차별 복장 금지는 정당”

부르카 금지법에 찬성하는 쪽은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행위가 덴마크의 보편적 사회 규범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쇠렌 포울센(Søren Pape Poulsen) 덴마크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부르카 금지법을 입안하며 “(부르카와 니캅이) 덴마크 사회 공동체의 가치나 상식과 양립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서구권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린 복장이 공공 안전을 위협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부르카 금지법을 도입한 나라는 덴마크가 처음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2011년 처음으로 부르카 금지법을 제정한 뒤로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도 공공장소에서 얼굴 대부분을 가리는 복장을 입는 행위를 불법으로 못박았다.
이슬람 전통복장을 금지함으로써 여성 차별적 이슬람 문화에서 무슬림 여성을 해방시킨다는 시각도 있다. 아니 수지에르 국제여성인권연맹 회장은 프랑스가 부르카 금지법을 제정하자 “얼굴을 가리는 베일은 대놓고 여성의 존재를 없애는 것과 같다”라며 이 법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무슬림 여성 자기결정권 침해”

반대 측은 이슬람 전통 복장을 입는 것은 무슬림 여성이 선택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부르카 금지법이 무슬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부모가 터키에서 이민 와 덴마크에서 나고 자란 30세 여성 무슬림 사라(Sarah)는 <베를링스케>와 인터뷰에서 “(덴마크 민주주의) 체계를 믿음을 잃었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정치인은 무슬림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무함마드 캐리처커를 그릴 때나 자유와 인권을 들먹입니다. 하지만 나한테는 마음대로 옷 입을 권리를 빼앗았죠. 무슬림한테는 다른 사람과 동등한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정치권에는 위선이 가득합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이 법이 “여성의 인권을 차별적으로 침해한다”라고 비판했다. 공공 안전이라는 명분을 고려해도 부르카 금지법은 과도하다고 포티스 필립포우(Fotis Filippou) 국제앰네스티 유럽 부지부장은 말했다.
“얼굴을 전부 가리는 베일을 공공 안전을 위해 몇몇 구체적 상황에 금지하는 일이 적법하다고 치더라도, 이 부르카 금지법은 필연적으로 과도하게 여성의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이 법의 의도가 여성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비참하게 실패했죠. 무슨 옷을 입는지를 기준으로 여성을 범법자로 규정하는 이 법은 덴마크가 그토록 부르짖는 자유를 놀림감으로 만듭니다.”

사회 통합 vs. 다양성 존중

1일 덴마크 부르카 금지법 반대 시위에는 무슬림 뿐 아니라 덴마크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다양성을 지켜야 한다는 덴마크인도 합세했다.
하지만 대세는 사회 통합을 강조하는 덴마크 정부 편이다.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부르카 금지법이 종교 자유를 침해한다는 파키스탄 출신 프랑스 여성의 주장을 기각했다. 재판소는 “부르카 금지법이 유럽인권보호조약에 위반되지 않는다”라고 2014년 판시하며 ‘얼굴이 사회 상호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프랑스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소는 2017년 7월11일 벨기에 부르카 금지법이 “다른 이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는 조치로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적”이라며 합법이라고 판결했다.

3 thoughts on “덴마크, 논란 속에 ‘부르카 금지법’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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