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人사이드] 한국말로 노래하는 덴마크 레게 뮤지션, 필립K

“내 취미 중 하나 우주 여행을 하지. 많은 별들을 보며 살아움직이는 빛의 지구는 어떤 곳일까. 태양 너머 저곳은.”
어린 외계인은 궁금하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사는 지구라는 행성은 어떤 곳일까. 밤이 되면 살아 숨쉬듯 빛 나는 그곳에 놀러가고 싶다.
어른 외계인은 말린다. 어린 외계인이 다칠까 걱정스럽다. 인간은 서로를 죽이고 있지도 않은 것을 돈이라 부르며 탐한다.
“지구에서 놀지마. 상처만이 네게 있을뿐. 지구에서 놀지마. 슬픔만이 네게 남을뿐.”

동화 같이 아기자기한 레게 리듬에 철학적인 가사를 얹어 노래한 가수는 한국인이 아니다. 4년 전 한국에 온 덴마크인 가수 필립K(Philip K)다. 덴마크인이 한국말로 노래하는 게 신기했다. 음반사를 통해 만남을 청했다. 필립K는 흔쾌히 응했다.
필립K는 레게 뮤지션이다. 1990년대 덴마크에서 베이스앤트럼블(Bass and Troumble)이라는 레게 밴드에서 리드 보컬로 활약했다. 당시 레게 밴드는 덴마크에서도 희귀했다. 록 음악이 가장 인기가 높았다. 1987년 결성된 베이스앤트럼블은 레게와 힙합, 알앤비(R&B)에 뿌리를 두고 래퍼와 댄서 등 다양한 예술가와 협업하며 그루브를 강조한 음악을 선보였다. 90년대 덴마크 레게 신을 이끌었던 그가 한국에 온 이유가 궁금했다. 2016년 6월과 2017년 3월 두 차례 서울에서 필립K를 만났다. 아래는 두 인터뷰를 읽기 쉽게 조합했다.

안상욱: 한국에 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필립K: 아내가 한국으로 발령 받아 2013년 함께 왔어요. 아내 마리아 스코(Maria Skou)는 주한덴마크대사관 이노베이션센터장이거든요.
: 한국어로 싱글 앨범을 낸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K: 한국인 친구 덕분이에요. 2014년 오정석이라는 친구와 ‘지구에서 놀지마(원 제목 Don’t play with the earth)’를 영어로 녹음했어요. 정석이 “듣기 좋은데 한국어로 녹음해보지 않겠냐”라고 말했죠. 전 그냥 웃었어요. 한국어 교육과정을 수강하고 과외도 받고 있는데 진도가 너무 안 나가거든요. 내게는 불가능한 일로 보였죠. 가족도 돌봐야 하는데 말입니다.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가볍게 정석에게 “네가 코러스를 번역하면 어떻게 하겠냐”라고 되물었죠. 정석이 한국어 가사를 적어줬어요. 가사를 읽어보고 노래로 불러봤는데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사를 제대로 번역해줄 사람을 찾았어요. 작곡가인 성낙원을 만났습니다. 노래를 설명하고 1~2개월 만에 번역해 가사랑 발음 가이드도 받았어요. 스튜디오에 녹음하러 갔을 때도 낙원이 가이드해줬어요.
: 덴마크에서도 레게는 비주류 장르로 압니다. 왜 레게 음악을 시작했나요?
K: 레게 음악은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나는 10대때부터 레게 음악을 했어요. 10년 동안 내 밴드를 했죠. 내가 처음 쓴 노래와 밴드와 연주한 노래도 모두 레게 음악이었어요. 다른 스타일도 시도해봤지만 결국 돌아왔죠.
: ‘지구에서 놀지마’에 담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K: 원곡은 아이들아 ‘지구에서 놀지마(Children, don’t play with the earth)’였어요. 오랫동안 가사를 썼어요. 2004년 한 해동안 매주 스티그 페데르슨(Stig Geer Pedersen), 아나스 베스테르고(Anders Vestergård)와 만나 노래를 썼어요. 스티그가 재치 있는 친구예요. 많은 아이디어가 스티그 머리에서 나왔죠.
그 중 하나가 외계인이 노래하는 것이었어요. 우주여행자죠. 이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살아보려 하지만 지구에 문제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구를 떠나요. 그가 우주선에 타서 부르는 노래가 이겁니다. 어린 외계인들에게 경고하는 것이죠.
하지만 내 의견을 중요하지 않아요. 모든 노래를 청중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영어로 부르든 한국어로 부르든 멜로디 자체가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 두 번째 싱글 ‘너와 함께면’은 첫 번째 한국어 노래 ‘지구에서 놀지마’보다 훨씬 사랑스러운 노래인데요.
K: 일부러 쉬운 사랑 노래를 냈어요. 제 노래를 번역하기로 한 친구가 저랑 2~3번 얘기하다가 너무 어렵다고 포기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쉬운 노래를 줬어요. 그랬더니 이 노래는 정말 빨리 번역하더라고요.
사실 ‘너와 함께면’이 ‘지구에서 놀지마’보다 한국어로 먼저 나왔어요. 공개는 2017년 1월에 했지요. 합정 근처에서 공연했는데 마침 설 연휴였어요. 다행히 50~60명이 와줬지요.

: 세 번째 싱글 ‘하늘을 보네’는 다시 정치적으로 돌아왔습니다.
K: 사람들이 종교나 정치나 과학 같은 걸 믿잖아요. 뭔가 믿는 사람드은 자기 믿음은 사실이고 남은 아니라고 재단하지요. 저는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믿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말고요. 누가 아나요.
‘하늘을 보네’는 대화하듯이 풀었어요. 앞에서 “신이 있다”라고 하면 다음에는 “신은 없다”라고 하는 식이죠. 어쩌면 안티 갓스펠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믿음에 의심을 품으니까요 (웃음)
: 세 번째 곡은 언제 쓴 건가요?
K: 2년 전에 썼어요. 오래된 공책에서 코러스 파트를 찾았죠. 거기다 새로운 걸 더하고, 오래된 걸 걷어내고 아예 새로운 곡으로 바꾸는 식으로 보통 저는 작업해요. 그러다보니 오래 걸렸죠.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예요.
: 덴마크는 루터교에 뿌리 둔 기독교 국가인데 막상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없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기독교적인 가치가 사회에 영향을 계속 미치지 않나요?
K: 덴마크인은 이름도 성인 이름을 따고, 결혼도 교회에서 하길 원하거든요. 문화적인 밑바탕은 여전히 교회인 것 같아요. 어떤 기사를 읽었는데, 덴마크인은 기독교적 가치를 교회를 안 가도 믿는다고 해요. 기독교는 신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이 내재적 가치가 있다고 가르치죠. 이런 가치가 덴마크 사회에 깔려있죠.

덴마크 레게 뮤지션 필립K (사진: 안상욱)
덴마크 레게 뮤지션 필립K (사진: 안상욱)

: 한국에서 덴마크인으로 살기는 어떤가요.
K: 좋아요. 새롭고요. 덴마크와 달라요. 자녀 2명과 함께 와서 초기 6개월 동안은 적응하기 바빴어요.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탐구했죠. 그 뒤에야 긴장이 풀렸어요. 아이들은 외국인 학교에 다녀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어요.
: 외국 뮤지션으로서 한국에서 활동하기는 어떤가요.
K: 외국인으로서 음악을 녹음하고 시장에 내놓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한국 청중과 연결되려면 사람들이 알아야 하죠. ‘지구에서 놀지마’는 한국 미디어나 시장이 제 음악을 들을지 시험해 본 거예요. 카카오나 네이버, 멜론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노래를 공개하려고 해요. 그래야 홍보가 되니까요.
: 한국에서 휘게 열풍이 부는데 덴마크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K: 덴마크에서는 인사 대신 휘게라고도 해요. 조금 젊은 친구는 “keep chilling”이라고 하고요. 떠날 때 하는 재밌는 인사말이지요.
촛불과 휘게가 연결된 것 같아요. 덴마크에서 겨울이 한국보다 더 어둡잖아요. 겨울이 길기도 하고요. 우리는 추위에서 벗어나야 하고 및이 필요하니까 편안한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지난 주말에 아내랑 친구들을 만났어요. 상수역 근처에서 열린 와인 시음회에 갔는데요. 아무도 휘게라는 말을 안 썼지만, 그 시간이 바로 휘게였죠.
한국에서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한다고 생각해요. 친구들과 어울릴 때마다 휘게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한국인도 이미 휘게를 갖고 있어요. 단지 덴마크인에게 휘게라는 단어가 있을 뿐이죠.
: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떤가요?
K: 조만간 한국 레게 뮤지션 킹스턴 루디스카 보컬과 작업한 곡이 나올 거예요. 그럼 같이 공연을 할 것 같아요. 1월 공연에도 킹스턴 루디스카가 와서 같이 공연했거든요. 새로운 곡이 나오면 ‘킹스턴 루디스카와 필립K’로 나올 거예요. 아직 발매일은 확정되지 않았지만요.
곧 나올 신곡은 ‘모두 좋은 세상 되길 원해’예요. 문제에 압도되지 말고 주변 환경이 당신을 어렵게 해도 행복하길 원하라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행복한 노래예요. ‘지구에서 놀지마’처럼 캐치한 멜로디라고 생각해요. 킹스턴 루디스카랑 같이 작업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곡 대다수는 덴마크 프로듀서랑 작업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보통은 프로듀서가 보컬 없는 노래를 스튜디오에서 만들어 보내는데, 이 노래는 제가 스카로 주문했어요. 킹스턴 루디스카가 좋은 스카 밴드라고 들었거든요. 그가 보내준 멜로디를 듣고 킹스턴 루디스카한테 한국어 가사를 써달라고 해서 세 세션을 만들었죠. 그걸 다시 덴마크 프로듀서한테 보내줬더니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왜 영어로는 안 부르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구글 번역기로 돌리고, 직접 물어보고 해서 영여 가사도 썼어요.
그 다음 늦은 봄에는 더 큰 프로젝트가 있어요. 지금까지 4번째 5번째 한국어 노래가 있어요. 6번째 곡은 지금 쓰는 중이고요. 여섯 곡을 모으면 미니앨범(ep)으로 만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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