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

코펜하겐은 유명한 자전거 도시다. 어린 아이부터 장년층까지 누구나 자전거를 탄다. 코펜하겐 도로변에는 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이 주차돼 있다.
자전거 앞에 커다란 바구니를 달아 아이와 애완동물을 태우고 달리는 덴마크 아빠. 자전거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며 옆 사람과 대화하는 직장인. 비 내리는 날 우비를 입고 페달을 밟는 학생들. 덴마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만한 자전거 문화다.

자전거 앞에 커다란 짐칸을 달아 실용적으로 만든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christiania bike) (사진: 조혜림)
자전거 앞에 커다란 짐칸을 달아 실용적으로 만든 크리스티아니아 바이크(christiania bike) (사진: 조혜림)

일주일 동안 코펜하겐을 여행한 유승호 교수(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는 코펜하겐 시민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고 남다른 생각을 했다. ‘자전거는 미디어’라는 것.

걷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속도로 함께 다니는 경우만 도시의 거대한 주민의 숫자는 중간 규모의 집단 크기로 축소된다. 자전거가 그만큼 자신을 가시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엑셀로드는 협력의 발생 원리를 증명한 학자인데, 그의 발견 중의 하나는 협력이 진화하려면 ‘개인들이 다시 만날 확률이 충분히 커서 미래에 서로 이해관계로 얽힐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협력은 창발한다. […] 자전거는 놀랍게도 다시 만날 확률을 가장 높여주는, 그것도 코펜하겐 같은 ‘작고 아름다운 대도시’에서는 더욱 그 가능성을 높여주는 수단이었다. 자전거는 이렇게 그들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있었다. (58쪽)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은 유승호 교수가 덴마크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그는 사회학 박사로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차례로 재직하며 국가 정보화와 문화 콘텐츠를 국가적 화두로 만드는 데 힘써왔다. 사회학자로서 유승호 교수는 코펜하겐 거리를 거니는 순간마저 행복의 의미와 복지의 본질을 직접 확인할 기회로 활용했다. 부지런한 저자 덕분에 나를 비롯한 독자는 이 책에서 북유럽의 문화와 역사라는 맥락에서 태어나 작동하는 복지 모델을 살펴보고, 이를 한국에 어떻게 적용할 지 고민할 계기를 얻는다.
처음 책 표지만 보면 여행 안내서 혹은 여행 에세이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나도 제목만 보고 오해했다. 유승호 교수도 책을 읽으며 독자가 느낄 배신감(?)을 예상했는지 책 첫 장에 “당신의 북유럽 여행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었다면 고이 놓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정중한 경고를 남겼다.
고작 일주일 여행했던 경험을 책으로 썼다고 지레 평가절하하지는 말길. 유승호 교수가 코펜하겐에 머문 기간은 일주일뿐일지 모르지만, 그 일주일은 덴마크를 연구하고 공부한 오랜 기간이 녹아든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코펜하겐 복판 루이스 여왕 다리(Dronning Louises Bro) 위를 자전거로 달리는 시민들 (사진: 안상욱)
코펜하겐 복판 루이스 여왕 다리(Dronning Louises Bro) 위를 자전거로 달리는 시민들 (사진: 안상욱)

코펜하겐에서 덴마크인과 똑같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도 나는 그저 ‘목적지’만 보고 페달을 밟았던 것 같다. 자전거를 타며 움직이는 여정은 중요치 않았다.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나를 최대한 빨리 옮겨주는 것만이 내 자전거의 역할이었다. 자전거가 내달리는 와중에도 정작 안장 위에 앉은 사람의 사고는 정지해 있던 셈이다.
유승호 교수는 자전거 천국 코펜하겐에서 자전거가 아니라 자전거에 탄 사람을 발견했다. 내가 덴마크인과 달랐던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스쳐지나간 수 많은 인연을 생각하니 아쉽다. 조금만 더 천천히 달릴 걸 그랬다.
한국과 덴마크를 비교하면 대부분 덴마크의 좋은 점만 보인다. “우리가 처한 처지” 때문에 덴마크가 더 멋져 보이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나라를 함께 두고 보면 비교하는 일은 불가피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때는 비교 자체보다 어떤 방식으로 비교하는지를 유념해야 한다.
조금 모자란 어느 나라가 조금 더 잘 나가는 어느 나라를 숭배해서는 안 된다. 더 잘나가는 나라라고 모범 답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결정을 내린 역사가 축적된 모습일 뿐이다. 완벽한 사회란 없다. 유승호 교수 역시 이 점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딛고 사는 사회를 위해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배우되 추종하지 않고, 인정하되 사대하지 않는 당당한 태도로 덴마크를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A week in Copenhagen_Book_Cover<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  그들은 왜 행복할까>

 


<Naked Denmark>는 매달 ‘덴마크 북클럽’을 엽니다. 덴마크를 주제로 쓴 책 1권을 읽고 저자 또는 출판사 관계자에게 간단한 이야기를 들은 뒤 격의 없이 떠들며 덴마크를 공부하는 자리입니다.
두 번째 북클럽에서 읽고 만날 책이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입니다. 오는 3월4일(토) 오후 서울 홍대입구 근처에서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을 읽은 다른 독자분과 저자 유승호 교수님을 함께 만납니다. 덴마크 북클럽은 유료 회원제로 운영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여기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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