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덴마크 행복의 비결을 파헤치다 ‘휘게 라이프’

<휘게 라이프>라는 책을 처음 봤을 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덴마크 행복의 원천”이라는 소제목을 보고 뻔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지레 짐작했다. 덴마크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볍게 책을 펴고는 놀랐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휘게 라이프>는 한국에서 살던 26년과 덴마크에서 사는 7년 동안 내 모습을 되짚어줬다.

휘게는 덴마크 문화의 총체

덴마크 행복연구소 최고경영자(CEO)인 저자 마이크 비킹(Meik Wiking)은 책 머리에서 덴마크식 행복의 비결인 ‘휘게(hygge)’는 경험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휘게는 덴마크인이 느끼는 경험의 총체다. 덴마크 사회의 문화·교육·환경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휘게를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덴마크 코펜하겐국제공항에 도착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간접 조명의 따뜻한 빛과 아늑한 실내 디자인의 영향이다. 편안한 정서는거리로도 이어진다. 사람들이 여유롭게 길을 오가기 때문이다. 곳곳에는 자전거 페달을 밟거나 대화 나누는 사람이 보인다. 도로에는 행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표지판이 별로 없다. 권위적이지 않다.
<휘게 라이프>는 전반부에서 덴마크가 행복한 사회가 된 배경을 세 부분으로 나눠 소개한다. 휘게를 경험하는데 필요한 전제 조건, 덴마크이 생각하는 휘게, 누구나 즐기는 휘게 등이다.
내게 가장 인상적인 곳은 3장에서 공동체가 지닌 가치를 짚어낸 부분이다. 덴마크인은 행복과 대인관계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평생 이런 즐거움을 유지하며 산다. 어린 시절부터 어울려 사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몸으로 느끼고 자란 덕분에 어른이 된 뒤에도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신뢰와 애정을 쌓는다. 휘게 문화는 이런 맥락에서 태어난다.
휘게가 순식각에 덴마크인의 삶 속에 파고든 것은 아니다. 휘게가 덴마크 사회에 지배적인 문화로 자리잡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마이크 비킹은 코펜하겐 공항 옆 작은 항구 도시 드라괴르(Dragør) 사례를 소개한다.
드라괴르 시는 행복연구소와 손잡고 주민의 행복과 삶의 만족도를 측정하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다. 행복의 실체를 깊이 고민하고 과학적으로 연구했기에 덴마크는 지금처럼 행복한 나라로 거듭났다.

덴마크 코펜하겐 헤이하우스(Hay House)에서 직원들이 회의하는 모습 (사진: 안상욱)
덴마크 코펜하겐 헤이하우스(Hay House)에서 직원들이 회의하는 모습 (사진: 안상욱)

“행복하게 살려면 세금 많이 걷어야 해”

<휘게 라이프>에는 도발적인 주장도 있다. 행복을 실현하기에 앞서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한다는 것. 고개를 갸우뚱했던 내게 마이크 비킹은 그럴듯한 근거를 댄다.
그는 덴마크인이 세금 납부가 사회적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덴마크는 소득세율이 무척 높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월급 중 최대 60%까지 소득세를 내야 한다. 덴마크 정부는 평균 46.6%에 이르는 세금을 걷어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만든다.
덴마크인은 외부의 불확실성에서 생기는 불안함을 극복하고자 기꺼이 소득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사회에 투자하고, 그 대가로 탄탄한 복지제도 속에서 안전한 삶을 영위한다. 어떤 불행이 닥쳐도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에 덴마크인은 만족감이 지속되는 일상을 누린다. 안전한 토대 위에서 각자 행복을 추구하기에 덴마크인은 ‘휘게’할 수 있다.
신뢰는 덴마크 사회 곳곳에서 발현된다. 처음 덴마크에 왔을 때 나는 덴마크인이 쌓은 신뢰를 악용했다. 대중교통 요금이 무척 비쌌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지만, 시내에 나가는 주말에는 종종 무임승차를 했다. 왕복 요금이 3만 원 정도였기 때문이다. 덴마크 대중교통은 탑승시 표 검사를 안 한다. 가끔 검표원이 탑승해 표를 검사할 뿐이다. 시간이 지난 뒤에 당시 내 행동이 덴마크 사람들이 만든 신뢰 사회를 좀먹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척 부끄러웠다. 그 뒤로는 정기권을 구매해 다닌다.
덴마크인이 오래 공들여 만든 협력·신뢰·사랑은 덴마크 사회를 결집시키는 힘이다. 그 안에서 비로소 <휘게 라이프>는 실현된다.

여름 분수대에서 속옷만 입고 뛰노는 덴마크 아이들 (사진: 안상욱)
여름 분수대에서 속옷만 입고 뛰노는 덴마크 아이들 (사진: 안상욱)

휘게 라이프, 열악한 환경 극복하려는 노력의 산물

책 후반부에는 다양한 소재로 <휘게 라이프>를 체험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덴마크에 와보면 말하지 않아도 깨닫는다. 겨울에는 오후 3시면 새벽처럼 캄캄하다. 밖이 어둡고 추우니 자연스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덴마크인은 물질적 풍요 대신 저녁이 있는 삶을 택한다. 시내 상점은 6시면 문을 닫는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려는 노력 덕분에 덴마크인은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양초를 켜고 집안을 소박하게 꾸미는 일이 소소한 행복이 되는 이유다.
극도로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덴마크식 휘게 라이프를 추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휘게라는 덴마크어가 널리 쓰이며 많은 사람이 북유럽 스타일에 관심 갖는 이유는 빠른 성장만 추구하던 경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고민에 빠진 이에게 <휘게 라이프>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다.
 
HyggeLife_Book_Cover<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 – 덴마크 행복의 원천>

  • 마이크 비킹 지음, 정여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14,000원
  • 책 사러 가기

 

<Naked Denmark>는 매달 ‘덴마크 북클럽’을 엽니다. 덴마크를 주제로 쓴 책 1권을 읽고 저자 또는 출판사 관계자에게 간단한 이야기를 들은 뒤 격의 없이 떠들며 덴마크를 공부하는 자리입니다.
세 번째 북클럽에서 읽고 만날 책이 <휘게 라이프>입니다. 오는 4월1일(토) 오후 서울 연남동 덴마크 식당 스뫼르(Smør)에서 <휘게 라이프>를 읽은 다른 독자분과 함께 만납니다. 저자 마이크 비킹 소장을 초청하기는 어려워 사전에 질문을 받아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을 김희욱 대표가 방한해 전합니다. 덴마크 북클럽은 유료 회원제로 운영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페이스북 이벤트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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