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정 대신 잡아줄게”…북유럽 한인 민박 사기 주의보

눈앞이 캄캄하다. 부푼 가슴을 안고 난생 처음 만난 덴마크는 춥고 어둡다. 밤 11시 반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지만 마중 나오기로 약속한 한인 민박집 주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연락수단인 모바일 메신저로 다급히 메시지를 보내도 소용 없다. 채팅방에서 ‘1’이 사라지지 않는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출발하는 35번과 5A번 버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CC BY-SA Leif Jørgensen)
코펜하겐 공항에서 출발하는 35번과 5A번 버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CC BY-SA Leif Jørgensen)

코펜하겐 공항은 인적도 드물어 한층 더 을씨년스럽다. 이런 곳에서 혼자 노숙할 자신이 없다. 더 늦으면 대중교통도 끊겨 공항에 갇힐까 두렵다. 자정이 조금 지나 택시를 잡는다.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른다. 무작정 “가장 가까운 호텔에 내려달라”라고 할 수밖에…. 김난감 씨(가명)의 북유럽 여행은 이토록 황망하게 시작됐다.
마중 온다던 민박집 주인, 현지 도착하자 ‘잠수’
올해 초까지만 해도 김난감 씨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생전 처음 북유럽에 가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북유럽 여행 정보가 별로 없었다.
네이버에서 정보를 찾던 김 씨는 지식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한 민박집을 알아냈다. 스웨덴 말뫼 지역에 있다는 한 한인 민박이었다. 이 한인 민박은 덴마크 코펜하겐과 말뫼와 룬드 등 스웨덴 서부 지역 여행을 도와준다고 했다.
여행 준비에 오랜 시간을 쏟기 힘들었던 김 씨는 민박집이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여행 일정을 짜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김 씨의 문의글은 내려가고 이메일이 왔다. 이메일에는 메신저 아이디가 적혀 있었다.
김 씨는 그 뒤로 이메일과 메신저로 민박집 주인과 연락하며 2주간 북유럽 여행 일정을 준비했다. 숙박비와 투어 상품 등을 포함해 약 200만원을 한국에서 입금하고 확약서도 받았다. 그리고 민박집 주인을 믿은 채 코펜하겐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 씨는 덴마크에 도착하고 나서야 자신이 사기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민박집 주인은 자기 휴대전화를 손님이 빌려갔다거나 민박집이 문제에 휘말려 업무정지를 당했다며 전화번호나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김 씨는 하릴없이 모든 여행 일정을 직접 계획해야 했다. 비행기표는 직접 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김 씨는 민박집에 환불을 요구했다. 민박집 주인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환불을 미루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메일로 송금영수증 사진을 보냈다. 지인을 통해 한국 은행에 확인해보니 송금영수증은 가짜였다. 김 씨는 스웨덴과 한국 경찰에 이 민박집을 사기 혐의로 신고했다.
사기 (출처: 플리커 CC BY GotCredit)
사기 (출처: 플리커 CC BY GotCredit)

북유럽 한인 민박 사기 경보
이 한인 민박에 사기 당한 한국인 관광객은 김 씨만이 아니다. 2015년 8월에도 같은 업체 손을 빌려 북유럽에 왔던 자매가 봉변을 당했다.
코펜하겐에 한 달 동안 묵을 숙소를 예약해 준다며 시세보다 3배 비싼 요금을 받고 방값 이외 돈을 커미션 명목으로 가져갔다. 방을 빌리는데 보증금을 내야 한다고 3개월치 월세도 받아 챙겼다. 신용카드 번호를 알려주고 비행기표 예약을 맡겼지만 비행기표는 안 사고 엉뚱한 나라에서 방값을 치르는데 썼다.
신용카드로 결제된 돈은 카드회사에 금융사기로 신고해 막았지만, 현금으로 치른 비용은 돌려받지 못했다.
지식인 댓글 달며 고객 유치해 일대일로 응대
한인 민박이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를 확인했다. 공개된 게시물은 거의 없었다. 게시물을 보려면 회원으로 가입해야 했다. 김난감 씨가 사기임을 확인할 즈음부터 신규 가입은 막힌 상태다.
북유럽 한인 민박집에서 사기 당한 피해자 김난감 씨(가명)가 해당 민박집의 네이버 카페를 보여줬다 (사진: 안상욱)
북유럽 한인 민박집에서 사기 당한 피해자 김난감 씨(가명)가 해당 민박집의 네이버 카페를 보여줬다 (사진: 안상욱)

김난감 씨를 통해 카페에 들어가봤다. 게시물은 직접 작성한 것보다 어디선가 퍼날라 짜깁기한 것이 대부분이다. 투어 상품으로 올린 게시물도 실제 코펜하겐에서 다른 곳이 운영하는 투어 정보를 퍼날라다 가격을 터무니 없이 붙여뒀다.
질문이나 댓글로 상호작용하는 경우는 퍽 드물었다. 그 드문 경우도 확인해보니 이 카페에 남긴 게시물 외에 활동이 없는 유령 회원이 대다수로 보인다.
민박집을 실제로 운영하는지도 의심스럽다. 확약서에 적힌 이름은 이모씨였으나 한국에서 돈을 입금 받은 계좌명은 양모씨였다. 카페나 확약서, 이메일 등 어디에도 공식적으로 등록된 법인 정보는 없다. 김난감 씨는 말뫼에 사는 지인을 통해 확약서에 적힌 주소를 찾아가봤지만 민박집은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화번호도 잘못된 번호였다. 실제로 운영하는 업체라면 하기 힘든 치명적인 실수다.
사기로 의심되는 북유럽 한인 민박이 네이버 지식인에서 활동한 모습 갈무리
사기로 의심되는 북유럽 한인 민박이 네이버 지식인에서 활동한 모습 갈무리

이 한인 민박은 네이버 지식인에 북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사용자에게 댓글을 달며 카페에 가입하도록 유도한 뒤 공개된 장소에는 증거를 남기지 않고 일대일로 응대한다. 김난감 씨도 카페에 질문 글을 올리자 글은 내려가고 이메일로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줬다고 말했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일일이 확인할 경황이 없던 김난감 씨는 결국 마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김 씨는 “정보도 많이 알고, 카페에 사진도 올라오니 이 사람이 여기에 유학하다가 눌러 앉아 사는 사람이라고 지레 짐작했다”라고 한탄했다.
아무리 급해도 다리는 두드린 뒤 건너야
스웨덴 주재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신고된 사기 의심 사례는 김난감 씨 사건뿐이라고 밝혔다. 대사관은 대처 방법을 일러줄 뿐 직접 피해자를 돕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사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직접 해당 국가 경찰에 신고해 사기임이 사실로 밝혀진 뒤에야 웹사이트에 경고문을 올리는 등 공식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한국 대사관의 입장이다.
사기 당하지 않으려면 본인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업자로 등록한 업체를 이용하는 편이 가장 안전하겠다. 한국 은행계좌로 입금받는다면 사업자등록에 나온 대표자 명의와 계좌 명의가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상품을 파는 통신판매사업자는 공정거래위원회 웹사이트에서 사업자등록번호로 조회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웹사이트에서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 사업자등록번호를 조회한 모습
공정거래위원회 웹사이트에서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 사업자등록번호를 조회한 모습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소규모 업체라면 차선책으로 고객 후기나 불만 처리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곳을 이용하자. 오랜 기간 동안 좋은 평판을 쌓아온 업체라면 믿을 수 있을 테다. 고객 불만도 삭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한층 더 믿음직스럽다.
정식으로 사업자로 등록하지도 않고 관련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 곳이라면 가격이 아무리 저렴해도 이용하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사기꾼이 아니라고 쳐도 직접 이용한 고객의 평가를 공개하기 어려울 만큼 형편 없는 업체일 공산이 크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여행 비용 중에 몇십만원 아끼려다 모조리 날릴 텐가. 이런 위험은 감수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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