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유력 정치인 코펜하겐 시장, 미투 혐의 제기 3일 만에 정계 은퇴

프랑크 옌센(Frank Jensen) 코펜하겐 시장이 다수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미투(Me Too) 운동이 시작된 지 3일 만에 정계에서 은퇴했다. 유력 정치인인 현직 코펜하겐 시장에 미투 혐의가 제기된 지난 16일 금요일부터 정계 은퇴를 발표한 19일 월요일 아침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했다.

16일 금요일 밤, 폭로

10월16일 금요일 밤 8시18분. 일주일의 수고를 뒤로한 채 불금을 보내려던 덴마크인에게 속보가 날아왔다. 유서 깊은 덴마크 일간지 <윌란스-포스텐>(Jyllands-Posten)이 현직 코펜하겐 시장이자 집권 여당인 사회민주당(Socialdemokratiet) 부대표인 프랑크 옌센이 적어도 2명의 여성을 성추행했다고 보도했다. 사회민주당 코펜하겐 지부 당원 마리아 구드메(Maria Gudme)는 2012년 프랑크 옌센에게 추행당했다고 밝히며 그를 “연쇄 추행범”(en seriekrænker)이라 불렀다. <윌란스-포스텐>은 2011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프랑크 옌센에게 추행당했다는 다른 피해자도 찾아내며 마리아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프랑크 옌센은 <윌란스-포스텐>의 반론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대신 페이스북에 미안하다며 포스트를 올렸다.

“오늘 <윌란스-포스텐>이 제가 선을 넘었다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다수 여성이 제 행위로 말미암아 추행당했다고 느끼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죄송하다는 말씀을 여러분께 드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무엇보다 이 점을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다수 정치적 상황을 포함해 불건전한 문화가 존재합니다. 저 자신도 그 일원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덴마크는 중요하고 단호한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이 덕분에 제 행위를 돌이켜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사건과 세부 사항마다 다르게 경험된 지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여성이 제가 도를 지나쳤다고 느껴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 책임은 온전히 제게 있습니다.”

17일 토요일, 진보 진영도 사퇴 요구

주말 사이 프랑크 옌센 시장에게는 사민당 안팎에서 사퇴하라는 압력이 쏟아졌다. 2019년 총선에서 사민당 단독 정부 구성을 지지한 진보 진영 급진자유당(Radikale) 소속 코펜하겐 사회 부문 시장 미아 뉘고르(Mia Nygaard)는 프랑크 옌센을 시장으로서 지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저는 정말로 충격받았습니다. 2011년 크리스마스 점심 파티에서 사민당이 교훈을 얻었길 바랐(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실리에 프리에스(Cecilie Sværke Priess) 사민당 청년부(DSU) 코펜하겐 지부장은 보도가 나간 뒤 하루 만에 프랑크 옌센 시장의 성추행 혐의를 8건 더 제보 받았다고 <윌란스-포스텐>에 밝혔다. 혐의가 모두 사실이라면 프랑크 옌센 시장은 1990년대부터 30년에 걸쳐 당내 여성을 상습적으로 추행해 온 셈이었다.

18일 일요일 저녁 사민당 코펜하겐 지부, 긴급회의에서 시장 지지 결정

사민당 코펜하겐시 지부는 18일 일요일 저녁 6시30분 긴급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프랑크 옌센 시장도 출석해 성추행 혐의를 해명했다. 사민당 소속 코펜하겐 시의원 다수는 프랑크 옌센이 시장직을 유지하는데 동의했다.

하지만 당시 회의에 참석한 청년 당원은 긴급 회의가 정식으로 당론을 결정하기에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의혹이 제기된 당사자인 프랑크 옌센이 동석한 가운데 그의 거취를 손을 들어 결정하는 상황이 고압적이었다고 토로했다.

프랑크 옌센은 4시간에 가까운 긴급 회의를 마치자 마자 기자회견을 열었다. 40분 가까이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나는 추행범이었다”라며 보도된 성추행 2건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당내 지지에 힘입어 시장직은 계속 수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저는 두 번째 미투 파도(*덴마크 정계에서 성추행)를 불러온 문제의 일부가 됐습니다. 제가 해결책의 일부가 될 때까지 계속해 나아가겠습니다. 누군가는 저 자신이 저지른 추행을 조사하는 과정에 제가 참여하는게 가능하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 완전무결한 사람만 참여할 수 있다고 우리가 못 박아버린다면, 덴마크인은 용서하지 않는 사회에 살게 될 겁니다.”

사민당은 당 차원에서 법무법인(로펌) 노르봄 빈딩(Norrbom Vinding)에 프랑크 옌센의 성추행 혐의 조사를 맡겼다.

하지만 사민당 코펜하겐 지부를 제외한 덴마크 정계는 프랑크 옌센이라는 인물이 정치인으로서 명을 다 했다고 선을 그었다.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2019년 총선에서 사민당 단독 내각 수립을 지지했던 진보 진영까지 프랑크 옌센에 등 돌렸다. 진보 진영인 사회인민당(Socialistisk Folkeparti)과 적녹연맹당(Enhedslisten), 급진자유당(De Radikale), 대안당(Alternativet) 소속 코펜하겐 시의원들은 즉각 프랑크 옌센이 사임하고 성추행 혐의 수사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인민당 소속 코펜하겐 보건복지 담당 시장 시세 벨링(Sisse Marie Welling)은 피해자를 보호하려면 가해자가 조사 과정에 관여하면 안 된다며 <DR>과 인터뷰에서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피해자들이 나서 조사를 맡은 법무법인에 얘기하려면 안전해 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책임을 져야 할 장본인이 방해할 수 없어야 하죠. 시의회에는 프랑크 옌센을 해임할 법적 권한이 없지만, 사임하라고 그에게 강권했습니다. 그게 피해 사실을 밝혀준 여성들을 가장 존중하는 길이라고 말이죠.”

메테 프레데릭센(Mette Frederiksen) 덴마크 총리 역시 코펜하겐 시장이자 같은 당 부대표인 프랑크 옌센을 상대로 제기된 성추행 의혹을 상당히 심각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저는 제기된 (성추행) 혐의를 무척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 사민당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당장 고쳐야 할 문제 말이죠. 성희롱과 성추행에는 번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런 짓이 틀렸다는 문화를 함께 조성해야 합니다. 말로든 행동으로든 마찬가지로요.”

하지만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는 사민당 차원에서 프랑크 옌센의 거취는 결정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19일 월요일 정오, 정계 은퇴 기자회견

코펜하겐 시장실은 19일 오전 11시, 1시간 뒤인 12시에 이슬란스 브뤼게(Islands Brygge)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프랑크 옌센 시장의 거취가 결정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프랑크 옌센 전 코펜하겐 시장이 2020년 10월19일 정오 기자회견을 열고 성추행 혐의를 인정하고 정계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CC BY News Øresund – Sofie Paisley © News Øresund – Sofie Paisley)

“저는 정계에서 물러납니다.”(Jeg træder ud af politik)

19일 월요일 정오. 미투 혐의가 제기된지 3일 만에 16세에 정계에 입성해 한때 총리직을 다퉜던 유력 정치인이자, 집권 여당의 2인자, 현직 수도 코펜하겐 시장, 오는 지방선거에서 사민당을 이끌 유망주였던 프랑크 옌센은 덴마크 정계에서 물러났다. 록울 재단(Rockwool Fonden)과 덴마크 전국지방자치단체연합 KL(Kommunernes Landsforening), 덴마크 연금지급청(Udbetaling Danmark) 이사직은 지켰다. 록울 재단은 프랑크 옌센을 이사회에서 제명할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는 프랑크 옌센 전 시장이 “옳은 결정을 내렸다”라고 평했다. 역시 사민당 소속인 모겐스 옌센(Mogens Jensen) 성평등부(Ligestillingsministeriet) 장관도 19일 페이스북 포스트에서 프랑크 옌센의 정계 은퇴 결정을 지지했다. 더불어 성평등부 장관으로서 피해 사실을 밝힌 여성들 편에 서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프랑크는 오늘 어렵지만 필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그는 사회민주주의와 사회민주당의 가치를 자기 자신보다 위에 뒀습니다. 긴 정치 인생 중 제가 알아온 그 모습 그대로 말이죠.

저는 프랑크를 사회민주당과 덴마크, 코펜하겐에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힘을 보탠 노련한 정치인으로 압니다. 우리는 프랑크 옌센의 이런 업적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프랑크가 은퇴하기로 결정했다는 점도 저는 인정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당당히 나와 피해 경험을 말해 준 다수 젊은 여성은 용감한 분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 덕분에 저는 여타 덴마크 사회와 마찬가지로 정치계에도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성평등부 장관이자 사회민주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저는 피해 여성들 곁에 서겠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소셜미디어(SNS)에 피해를 고발했다고 이 여성들을 비난하는 댓글은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할 겁니다. 저는 그들의 경험을 털어놓을 용기를 내 준 여성들에게 우리가 감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프랑크 옌센이 물러난 코펜하겐 시장직은 2022년까지 사민당 코펜하겐 시의회 제1 부의장인 라르스 바이스(Lars Weiss)가 대행한다. 코펜하겐 시장은 2021년 10월29일 지방선거에서 선출한다.

프랑크 옌센은 누구?

프랑크 옌센(Frank Jensen) 전 코펜하겐 시장(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CC BY News Øresund – Jenny Andersson © News Øresund)

프랑크 옌센(Frank Jensen)은 2020년 10월, 30년에 걸친 상습 성추행 혐의가 불거지자 은퇴한 덴마크 사회민주당 소속 정치인이다. 정계 은퇴 당시 코펜하겐 시장이자 사민당 부대표로서 2021년 지방선거를 이끌 유력 후보였다.

1961년 5월28일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 북부 벤쉬셀(Vendsyssel)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키엘 옌센(Kjeld Jensen)도 사회민주당 스퇴우링(Støvring) 지부장을 지낸 정치인이었다. 16세에 부친의 길을 이어 사민당 청년부(DSU) 스퇴우링 지부장이 됐다. 어린 시절 유틀란트 북부 지방 TV 방송에서 빙고 게임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1986년 올보르대학교 (Aalborg Universitet)에서 고급경제회계학 석사(cand.oecon)과정을 마치고 같은 학교에서 노동시장 연구원으로 고용됐다. 1994년 포울 라스무센(Poul Nyrup Rasmussen) 정권에서 연구부 장관으로 임명돼 입각했다. 1996년에는 법무부 장관직을 맡았다. 2005년 당내 경선에서 사민당 대표 자리를 두고 다퉜으나 패했다. 당시 상대는 덴마크 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된 헬레 토르닝 슈미트(Helle Thorning-Schmidt)였다.

19년 간 국회의원으로서, 이 중 7년은 장관으로 활동한 뒤 2006년 국회를 떠났다. 2009년 코펜하겐 시장 후보로 나서 당선돼 2010년부터 10년 간 코펜하겐 시장직을 역임했다.

참고 자료

[편집자 주] 10월25일 오후 1시24분 추가: 류하늬 독자님 제보로 오탈자 2건을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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