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룬트비 사상이 200년 뒤에도 유효한 이유? 역사 대전환기 반영해서!

“그룬트비는 덴마크 사회 전반에 스며 들어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됩니다. 그는 18세기 후기 농경사회에서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사회가 (산업사회로) 전혀 달라졌습니다. 정치인이자 시인, 역사학자로서 가족에 근거한 전통사회가 개인을 바탕으로 삼는 현대사회로 바뀌는 큰 변화를 목격했기에 그의 사상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았다고 봅니다.”

키르스텐 안데르센(Kirsten M. Andersen) 그룬트비 포럼 이사장은 200년 전 덴마크 사상가 니콜라이 그룬트비(Nikolaj S.F. Grundtvig)가 주창한 사상이 오늘날까지 유효한 이유가 역사의 큰 변곡점을 직접 경험한 데서 우러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마이뉴스>가 1월18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열림교회 꿈틀센터에서 개최하고 정승관 꿈틀리인생학교 교장이 사회를 맡은 ‘그룬트비의 생애와 덴마크 행복 교육‘ 대담 자리였다.

그룬트비는 현대 덴마크 사회의 뼈대를 구상했다고 평가 받는 중요한 사상가다. 스스로 목사였으나 루터교가 국교인 덴마크에서 국교회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공공연히 비판하다 파면 당했다. 신분 위계가 엄존하던 절대왕정 시기에 “신이 창조한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라며 귀족과 평민 자제가 같은 곳에서 공부하는 학교를 세우려 시도했다. 이런 그룬트비의 사상은 교육가 크리스텐 콜(Christen Kold)을 비롯한 당대 활동가에게 큰 영향을 미쳐 폴케호이스콜레(folkehøjskole) 등 자유학교(friskole) 운동이 덴마크 전역으로 퍼졌다. 자유와 정신, 공동체를 강조한 그룬트비 사상을 연구해 현대적 맥락에 맞게 재해석하는 비영리 시민 단체인 그룬트비 포럼(Grundtvigsk Forum)도 탄생했다.

크리스텐 안데르센 그룬트비 포럼 이사장은 특히 시민사회가 막 태동하던 당시부터 여기에 방점을 찍은 그룬트비의 선구안을 높이 평가했다.

“그룬트비는 영국에서 더 산업화된 사회를 목격했습니다. 굉장히 감명받았죠.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화되는 현상은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 개인과 국가가 분리되면서 제3지대가 필요해졌습니다. 개인과 국가가 만나는 지점, 자유로운 곳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공간(시민 사회)이지요. […] 예를 들어 도서관, 운동장, 수영장은 사회가 마련해 제공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든 시민이 쓰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공동체를 구성하죠. 모두가 어울리는 제3지대의 중요성을 역설했기 때문에 그룬트비 사상이 지금도 중요하게 받아 들여진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1월18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열림교회 꿈틀센터에서 <오마이뉴스>가 개최한 ‘그룬트비의 생애와 덴마크 행복 교육’ 대담회에서 발표 중인 키르스텐 안데르센(Kirsten M. Andersen) 그룬트비 포럼(Grundtvigsk Forum) 이사장 (안상욱 촬영)

키르스텐 안데르센 이사장은 남덴마크대학교 교원대(UC SYD Læreruddannelsen)에서 예비・현직 교사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그룬트비 사상 가운데 교육적으로 특히 중요한 3가지 주장을 소개했다.

첫 번째는 성경보다 공동체의 생활 언어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룬트비는 기독교적 가치는 성경을 읽어서 배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동체 속에서 살아 숨쉬는 언어로 가치를 습득하는 일이 이를 활자로 적은 성경을 외우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예수는 설교만 했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그룬트비가 공동체에서 구전 학습을 강조하는 근거다. 이 덕분에 지금도 덴마크에서는 학술적 가치보다 생동하는 경험을 강조한다.

두 번째는 평등(equality)과 동질성(likeness)이 같다는 주장이다. 당시 성문화된 성경은 글자를 해독할 수 있는 소수만 접할 수 있었다. 교계 역시 위계적인 구조였다. 그룬트비는 “모든 인간은 신이 창조했기에 동등하고, 따라서 사회에서도 평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천부인권을 당시 막 발병된 사상이 아니라 기독교의 태생부터 연유했다고 풀이한 것이다. 그룬트비는 “하늘에서 신성한 빛이 내려온다”라는 오래된 찬송가를 “바다에서 신성한 빛이 올라온다”라고 개사해 시로 옮겼다. 이 시는 당국에 검열당해 오랫 동안 출판되지 못했다.

세 번째는 표현의 자유다. 교계에서 파문 당하고, 검열 당해 시를 출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자 보수적인 그룬트비마저 민주주의가 중요함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는 자기는 기독교가 진리라고 믿는 기독교 신자지만, 이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다양한 의견과 종교를 가진 사람이 각자 관점을 지닌 채 사회와 학교에 공존해야 한다고 여겼다.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그의 사상은 덴마크 문화 전반에 뿌리 깊이 녹아 들었다. 키르스텐 안데르센 이사장은 덴마크 교사는 학생이 스스로 의견을 세우도록 돕는다고 전했다. 각자 다른 의견을 보탬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기여하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우리가 평등하고 동질하지만, 그렇다고 꼭 동의해야 하는 건 아니지요.”

1시간 남짓 키르스텐 안데르센 이사장이 발표한 뒤,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덴마크 교육에 이해도가 천차만별인 참가자가 와서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덴마크 교육의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키르스텐 안데르센 이사장은 “학교 교육에서 실패하면 자기한테 문제가 있다고 받아들이고 우울에 빠지는 학생이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시대이니 학교에서 성과를 못 내면 경쟁력을 잃는다고 느끼는 겁니다. 이런 문제는 전 세계에서 나타나죠. 각국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같은 문제에 맞닥뜨립니다. 덴마크에는 정신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는 학생이 많습니다.”

또 학교 제도 자체에 의문을 품는 학생도 나타난다고 그는 말했다.

“학교에 왜 와야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학생이 늘 나타납니다. 우리 교육자가 항상 답해야 할 문제지요.”

크리스텐 안데르센 이사장은 대담을 마무리하며 “글로벌 시대에는 각국에서 같은 문제를 공유한다”라며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해법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각자 스스로 해결책을 개발해 나누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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