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교육] 호떡 청년의 행복 배달 프로젝트

한국 교육 시스템이 한 덴마크 국영방송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적 있다.
방송을 본 많은 덴마크 친구가 페이스북으로 내게 연락했다. 한국 학생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믿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한 친구는 수업 시간이 끝나고 휴식시간에 내게 물었다.
“브루스(Bruce·필자 영어 이름), 너도 학생 때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한 거야 ? ”
“부정하고 싶지만 나도 그랬어…. 네가 지금까지 공부한 시간을 다 합쳐도 내가 고등학생 때 공부한 시간이 2배 더 많을 수도 있어.”
“왜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해야 하는 거야?”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가니까….”
“왜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데?”
“좋은 대학에 가면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거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너한테 뭐가 좋은데?”
“좋은 직장은 돈을 많이 주거든….”
“그럼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하면 언제 놀고 언제 쉬어?”
“못 쉬어. 내가 쉴 때 다른 친구는 공부하잖아. 내가 노는 동안 다른 친구 성적이 올라간다는 얘기잖아. 그러면 넌 공부를 왜 하는데?”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려고 공부하지.”
“철학자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커피나 한 잔 마시자.”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며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공부한다니. 교환학생 첫 학기 때 덴마크 친구가 했던 말에 지금은 정말 공감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교환학생 생활 중 (사진: 김희욱)
교환학생 생활 중 (사진: 김희욱)

덴마크와 한국의 시차만큼 학생들이 공부를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 계기는 수업방식과 첫 시험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강의를 듣고 받아쓰고 외워 시험을 치는 방식에만 익숙했다. 난 덴마크 교환학생 학기 중에 그룹 프로젝트를 할 때면 다른 학우와 어떤 식으로 대화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하는 지 몰라 구슬땀을 흘리곤 했다.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치렀던 시험은 하필 구두시험(oral test)이었다. 처음 준비하는 시험 방식인만큼 서술 평가처럼 열심히 준비했다. 수업 자료와 교수 강의 녹음 본을 며칠 밤을 지새우며 외웠다.
첫 시험에 임하던 때는 자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교수는 수업 시간에 다뤘던 내용과 프로젝트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지금까지 배운 바를 바탕으로 ‘자기 생각대로’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주문했다. 나는 거듭해 외운 내용을 손쉽게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답변을 마친 뒤 교수의 표정은 아리송했다.
지도 교수와 다른 대학에서 평가를 위해 참여한 교수(sensor)가 이야기를 나눈 뒤 내게 준 점수는 ‘0점’이었다. 내가 0점을 받은 까닭은 단순했다. 한 학기 동안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자기식으로 소화해 활용할 능력이 낮고 자기만의 생각이 없다는 것. 30년 가까이 살며 0점을 받은 적은 없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평생 내가 공부하던 방식이 덴마크에서는 통하지 않음을 뒤늦게 알았다.
처음에는 그냥 덴마크 교육 시스템이 한국과 다르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교환학생으로 보낸 한 학기는 뿌리부터 달랐다. 덴마크 학우와 어울리며 그룹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토론할 때는 스스로 생각해 문제를 풀어야 했다. 한국처럼 이미 누군가 정해둔 정답을 골라내는 식이 아니었다.
16년 동안 한국에서 교육받으며 나는 언제나 누군가 이기려고 경쟁했다. 정상 위에 서려고 나 홀로 내달렸다. 성적 좋은 친구에게만 눈길을 주며 어떻게 하면 저 친구를 이길 수 있을지만 고민했다.
친구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친구는 정말 적었다. 몇몇 친구가 모여 간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 공부했던 때가 기억난다. 각자 잘하는 과목을 미리 정리해 와 서로 알려주고 격려를 주고받았다. 행복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슬프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건만,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지금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덴마크 학교에서 만나 논문을 같이 쓴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나와 같이 공부하면서 한국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한국 교육 현실을 알고는 내 페이스북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한국은 교육을 서열화한 나라야. 한국 교육 시스템은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부작용도 있지(South Korea is a country which prioritizes education. South Korea’s education system achieve very good results, but there are also some downsides).”
교환학생 생활 중 (사진: 김희욱)
교환학생 생활 중 (사진: 김희욱)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한국과 덴마크 두 나라의 시계는 다르게 돌아간다. 지금도 많은 한국 학생은 내가 지나온 길을 밟고 있을 거다. 놀 때 놀지 못하고, 쉴 때 쉬지 못하겠지. 다른 사람을 이겨야만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말을 목숨처럼 믿으며 늦은 시각까지 책상 앞에 앉아 참고서에 밑줄을 긋고 있을 게다. 집-학교-학원-집이라는 쳇바퀴를 돌리며 햄스터처럼 사는 학생이 많을 것이다.
자기 시계를 교육부 시계에 맞춰 연달아 달려드는 시험을 준비하는 데만 매달려 사는 한국 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기대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부모는 부모 나름대로 열심히 일해 번 돈 대부분을 자녀 교육에 쏟아붓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는 아이 교육비를 대려고 밤이 깊도록 일터를 떠나지 못한다. 부모가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자녀는 부모와 저녁 한 끼 같이 먹기 힘들다. 부모는 자녀 교육비 때문에 에듀푸어(edu-poor)가 되고, 자녀는 부모의 교육열 때문에 친구랑 마음껏 떠들 시간도 없는 타임푸어(time-poor)로 전락한다.
앞으로 <Naked Denmark>에 글을 연재하며 내가 한국과 덴마크 두 나라 교육 체계에서 얻은 경험을 공유하려 한다. 단순히 덴마크 교육 시스템을 칭송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덴마크 교육 시스템이 지금처럼 발전한 과정을 소개하겠다. 한국도 덴마크처럼 교육의 힘을 조직화할 방안을 찾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thought on “[덴마크 교육] 호떡 청년의 행복 배달 프로젝트”

  1. 안녕하세요. 서울 관악구 에서 지역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연재하는 글 매번 챙겨보진 못하지만..
    덴마크의 생생한 이야기를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히 생각하며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재 할 ‘덴마크 교육 시스템이 지금처럼 발전한 과정’ 잘 읽고,
    지역현장에서 함께 고민하며 실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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