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人사이드] 미래학자 롤프 옌센

김희욱 대표와 만난 롤프 옌센 (사진: 김희욱)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누군가 “꿈을 먹고 산다”라고 대답하면 어떨까. “헛소리 말라”며 고개를 젓지 싶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이 세계적 미래학자라면 어떤가. 흰소리 같은 말에서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성보다 감성, 드림 소사이어티가 온다

사람이 꿈을 먹고 산다고 말한 사람은 덴마크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급격히 발전한 덕에 인류는 생존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생산력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인류가 사는데 필요한 물건은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다. 상품은 넘치는데 그것을 구매할 소비자는 한정돼 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인류는 생존 이상의 가치를 좇기 시작했다. 롤프 옌센은 이런 맥락에서 인류 사회가 ‘드림 소사이어티’로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는 한 마디로 꿈을 먹고 사는 사회다. 생존을 위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했던 시대에는 이성?과학?논리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결과로 물자가 넘쳐 먹고 살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는 물건을 사지 않는다. 대신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하는 상품이 당장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상품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드림 소사이어티 책 표지

드림 소사이어티 책 표지

롤프 옌센은 1999년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를 내놓으며 정보혁명 이후 인간 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시장이 재화와 용역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거래하는 곳으로 바뀌리라고 분석했다. 감성 시장은 크게 6가지로 나뉜다. 모험 이야기 시장(adventure for sale market), 관심 시장(market for care), 우정과 사랑, 연대의 시장(togetherness, friendship and love), 정체성 시장(who am I market), 마음의 평화를 위한 시장(market for peace of mind) 등이다.

그는 감성 시장이 도래하고 이곳을 공략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크게 주목받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10여년 뒤,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롤프 옌센은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덴마크의 미래 성장동력을 연구하는 미래학연구소 소장 자리에 초청받아 일했으나 2001년 은퇴하고 직접 회사를 차렸다. 그가 꾸린 ‘드림컴퍼니(Dream Company)‘는 기업의 비전과 미래 전략을 컨설팅한다. 롤프 옌센은 드림컴퍼니에서 대표겸 최고상상책임자(CIO?Chief Imagination Officer)로 일한다.

한국과 인연도 깊다. 그는 이미 네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2014년 8월 덴마크를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도 롤프 옌센을 만나 서울시민을 행복하게 만들 방안을 논의했다.

나는 지난 11월 세계적인 미래학자 롤프 옌센과 만났다. ‘헬조선’으로 불리는 한국 사회 속에서도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만나고 싶다”라는 당돌한 한국 젊은이의 요청에도 세계적 미래학자는 흔쾌히 응했다. 드림컴퍼니 근처 노천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웠다. 덴마크에 교환학생으로 온 한국 대학생도 초청해 소중한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 일자: 2015년 11월25일 오후 1시
  • 장소: 덴마크 코펜하겐 프레데릭스버그 인근 카페
  • 참석: 롤프 옌센 드림컴퍼니 대표, 김희욱 에디터
  • 참관: 덴마크 교환학생 3명

그는 오래된 자전거에 몸을 싣고 카페에 왔다. 우리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갈색 가죽 가방에서 내가 미리 보낸 인터뷰 질문지를 꺼내들었다.

Heeoog Kim and Rolf Jensen

김희욱 에디터: 덴마크에는 아직도 북한과 한국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벌써 4차례 한국을 다녀가셨는데 한국을 어떻게 보셨나요?

롤프 옌센 드림컴퍼니 대표: 한국은 산업화 시대에 급격한 성장을 이뤘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삼성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한국은 IT 혁명을 통해 빠른 발전을 이룩했지요. 이제는 ‘드림 소사이어티’ 가 IT 기반 위에 만들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제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사람들이 제게 보여준 친절함이었습니다. 공항까지 나와서 반갑게 인사하고 호텔까지 안내해주더군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따뜻한 환대가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TV로 봤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배경인 강남이란 지역도 봤습니다. 다이나믹하고 변화하려는 의지가 강한 곳으로 느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한국이란 나라만이 갖고 있는 전통이 높은 빌딩에 가려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난 50여 년간 근대화·산업화·정보화를 빠르게 이뤄내는 과정에서 고유의 문화적 유산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 드림 소사이어티가 덴마크 또는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옌센: 덴마크 같은 경우는 지금처럼 겨울이 찾아오면 날씨가 안 좋아집니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크리스마스 런치(Julefrokost)를 함께 즐기고 가족에게 선물을 주곤 합니다. 이런 행위를 ‘사랑과 소속감의 시장’이라고 할 수 있죠. 앞으로 더 많은 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이런 곳에 개인주의적인 서구적 생활 방식이 확산될 수록 사람들의 외로움은 더욱 커질 겁니다. 그러면 사랑과 소속감의 시장은 계속 커지겠지요.

한국은 이미 IT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한류를 상품화해 수출에 성공한 경험이 있습니다. 국가적 이미지를 수출한 첫 번째 드림 소사이어티 국가가 된 것입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 한 곡이 강남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한국 문화·관광 산업에 가져오는 경제적 부가가치는 얼마나 클까요.한국 고유의 문화적 유산이 각각 이야기가 되고, 그것이 창의적 콘텐츠로 이어지면 창조경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덴마크가 세계에서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인가요?

옌센: 우선 신뢰(trust)가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덴마크가 행복한 나라 그리고 드림 소사이어티로 거듭난 비결은 바로 신뢰죠.

대다수 나라는 경제를 키워 국민에게 물질적 행복을 제공하는데 집중하느라 정신적 행복을 등한시했습니다. 을 통해 국민들의 물질적 행복을 뒷받침하는데 집중했기 때문에 정신적 행복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정신적 행복은 사회 구성원이 긴밀하게 소통하고 신뢰를 쌓아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교육을 예로 들어봅시다. 단순히 학교를 많이 세우는 것은 드림 소사이어티의 목표가 아닙니다. 제가 사는 덴마크는 과학 공원, 역사 공원, 자연 공원 등을 많이 만듭니다. 냉각 시스템을 만드는 한 회사는 학생들이 공학을 어려워하는 점을 걱정해 과학 공원을 지었습니다. 그 결과 덴마크는 물론 주변 국가 학생까지 찾아오는 명소가 탄생했지요. 이 학생들이 공원에 와 즐기며 공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물론입니다. 배움과 재미를 하나로 합친 사례죠. 이런 것이 드림 소사이어티가 추구하는 아이디어입니다. 단순히 시설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안까지 고민하는 겁니다.

: 지금 한국 국민은 세월호 사고 및 여러 가지 안타까운 소식들로 가슴 아파합니다. 앞으로 한국이 행복한 사회로 거듭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 한국 사회도 정보화 사회로 진입과 더불어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토대로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수직적 의사 결정과 위계 질서를 강조하는 전통적 모습을 벗어나 계층 구조가 점점 평평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앞으로 이런 변화를 강화하려면 모든 것이 교육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덴마크 학교는 학생들의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 지 여유를 두고 스스로 선택하게 합니다. 학교가 국가와 사회가 만든 안전한 환경 속에서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교육 문제에 돈이 개입하는 순간 일방향적이고 결과 중심적인 경쟁 체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교육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그칠 뿐이죠.

그런 교육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가로막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기업과 문화 산업계에서 활동할 훌륭한 이야기꾼을 육성하려면 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새로운 이야기 자원을 끊임없이 창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국가 경제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 유교 사상 때문에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수직적 위계 질서가 하루 만에 바뀌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어떤 일에 가장 먼저 집중해야 할까요?

옌센: 덴마크가 행복 지수 1위 나라가 된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삶을 위한 교육’을 지향하는 그룬트비의 사상을 좇아 학생들의 자발성과 구성원 사이에 수평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국가 주도 교육기관과 자유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덴마크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한 건강한 사회가 되기까지 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는 말입니다. 지도자 한 명이 사회를 개혁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깨친 상태에서 역동적으로 사회 개혁 운동에 참여한 덕분에 지금의 덴마크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에 수직적 위계 질서가 아직까지 존재한다면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힘 역시 리더십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강남구청장을, 코펜하겐에서는 서울시장을 만났습니다. 이야기한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라는 것을 느꼈지요.

: 앞으로 다가올 드림 소사이어티는 어떤 모습인가요?

옌센: 지금 사람이 하는 일은 기계와 컴퓨터에 의해 대체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에서 일가 여가의 경계가 흐릿해집니다. 재택 근무가 일상화되면 일과 놀이, 가족과 직장이 모두 하나로 뭉뚱그려집니다. 기업은 한 가정의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직원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놀이터이자 돈을 벌어가는 공간으로 변모하는 중입니다. 일이 끝난 뒤에는 많은 사람이 각자 관심사(interest)와 신념을 공유하는 자리가 더 많이 생기며 하위 문화가 곳곳에 나타날 겁니다.

: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앞으로 기업은 다품종 소량 생산 기법의 발전에 힘입어 개인화된 상품을 많이 내놓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덴마크 기업 중에 어떤 예를 찾을 수 있나요?

옌센: 덴마크 기업 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맥주 제조회사 칼스버그(Calrsberg)입니다. 소비자의 구매 욕구가 다양화되고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면, 소비자는 획일화된 상품 소비에서 벗어나 자신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한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때문에 생산자는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을 도입하고 있죠. 칼스버그는 소규모 양조장(micro brewery)을 유지하며 전통적인 방식을 지킴과 동시에 벤처 정신을 결합합니다. 좋은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특색이 살아 있는 다양한 맥주를 끊임 없이 만들어내는 거죠.

내가 운영하는 코펜하겐 호떡 노점 코팬에 와 '김치 호떡'을 맛보는 롤프 옌센

내가 운영하는 코펜하겐 호떡 노점 코팬에 와 ‘김치 호떡’을 맛보는 롤프 옌센

: 저는 코펜하겐에서 호떡 노점을 운영합니다.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호떡을 매개체로 만난 덴마크 사람들한테 배운 행복의 비결을 한국에 전하는 게 목적입니다. 이걸 ‘행복 배달 프로젝트’라고 부르는데요. 한국에 더 효율적으로 행복을 배달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옌센: 보내준 행복 배달 프로젝트 계획서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정말 멋진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덴마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행복을 효율적으로 배달하기 위해서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기준과 덴마크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기준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덴마크에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아볼 때 “오늘 하루 얼마나 웃었니(How often did you laugh today)?”라고 물어봅니다. 한국 직장인이 퇴근하고 술 한잔 나누며 주고받는 이야기도 고된 일상 끝에 찾아오는 웃음이라고 보면 그 순간이 행복일 수도 있어요. 그런 웃음이 직장과 학교와 가정에서도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행복지수도 올라가지 않을까요?

이런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전달하려면 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투자를 받아보세요. 정부 지원자금이나 크라우드펀딩을 노려봄직해요. 요즘 킥스타터 같은 좋은 크라우드펀딩 시스템도 있더군요.

: 본인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옌센: 제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내를 만난 때입니다. 너무 진부한 이야기인가요. 그렇다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 때라고 할게요.

저는 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30세가 됐을 때 공직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지루해지더군요. 공무원 생활에 만족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엘빈 토플러가 쓴 <제3의 물결>이라는 책을 읽고 미래학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덴마크 미래학 연구소로 직장을 옮겼지요.

덴마크 미래학 연구소에서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할 일을 결정했을 때 가장 행복했습니다. 아직은 상상력을 이용해 미래를 꿈꾸는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상상력이 바닥나면 은퇴해야겠지만 아직 이렇게 누군가에게 힘이 될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군요.

▲2014년 <르네상스 소사이어티>를 새로 펴내며 한국 독자에게 롤프 옌센이 보낸 영상 편지(출처: 36.5 내인생의책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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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호떡으로 행복을 배달하는 행복 배달원 김희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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