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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창업생태계를 낳은 7가지 요소

지난 포스트에서는 덴마크가 틈새시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발휘하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덴마크가 우수한 창업 생태계를 확보한 비결을 알아보자.
덴마크 창업 생태계는 세 가지 요소가 화학적으로 결합한 결과물이다. 든든한 사회복지제도, 사업하기 좋은 기업 환경, 정부의 체계적 지원 등이 훌륭한 창업 생태계를 낳은 요인이다. 첫 번째 포스트에서 정부 지원 정책을 소개했으니 다른 두 부분을 자세히 살펴볼 차례다. 이 포스트에서는 덴마크에 창업 생태계가 싹틀 토양이 된 사회복지제도와 기업 환경을 알아보자.

코펜하겐 복판 루이스 여왕 다리(Dronning Louises Bro) 위를 자전거로 달리는 시민들 (사진: 안상욱)

“실패해도 괜찮아” 든든한 사회복지제도

덴마크는 사회복지제도로 유명하다. 최근 한국 정부와 재계가 고용주가 손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일반 해고’를 뼈대로 한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며 덴마크의 ‘유연안정성(flexecurity)’을 예로 들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사회복지제도는 한국에서 말하는 유연안전성과 거리가 멀다.
덴마크에서는 세 가지가 공짜다. 교육?의료?복지 서비스가 모든 국민에게 무료로 돌아간다. 실직하면 최소 2년 동안 실업급여를 받는다. 실업급여로 받는 금액은 실직 전 3개월 평균 임금의 75~90%다. 상한액은 1만7918크로네, 우리 돈으로 308만 원이다.?한국에 비해 너무 오랫동안 많은 돈을 퍼 준다고 고깝게 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도 2011년 들어 정부부채를 줄이려고 4년에서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 내년부터는 수혜 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다시 늘어난다.
사실 사회복지제도는 공짜가 아니다. 덴마크 국민이 소득세로 월급 가운데 36~60%를 품앗이해 사회의 밑바닥을 다져 올린 결과다. 유연안전성 중에서 안전성이 먼저 뒷받침되는 환경을 만든 셈이다.
 

노사 합의로 만든 유연한 노동시장

제도적으로는 고용주가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 고용과 해고에 관한 규제가 거의 없다. 해고하려면 일정 기간 전에 알려줘야 한다는 규정 정도만 있을 뿐이다. 덴마크 노동시장의 유연함은 ‘1899년 9월 합의(Septermberforliget·September Compromise of 1899)’에서 태어났다. 노동조합과 고용주 연합이 4개월 동안 싸운 끝에 도출한 합의에서 노동조합은 고용주에게 자유롭게 노동자를 해고할 권리를 줬고,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노동3권과 경영참여를 보장받았다.
9월 합의의 중요성은 단순히 노사가 합의안을 명문화한 차원을 넘어선다. 서로 이익이 충돌하는 당사자끼리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 공통분모를 찾아 합의하는 구조를 만든 점이 더 중요하다. 1899년 9월 합의는 1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덴마크 노사관계의 기본 정신으로 살아 숨쉰다. 노사대타협 문화가 뼈대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 노동 관련 규제를 만들거나 법제화하지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노사가 교섭해 충돌을 해결한다. 최저임금법도 없다. 노사가 합의로 결정한다. 덴마크에는 노사 자치주의가 뿌리내렸다.
고용주가 해고할 권리를 얻었다고 해서 실제로 노동자를 마구 해고하지는 않는다. 고용이 불안해지만 노동생산성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동자가 진로 변경 등을 이유로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2년간 생활 수준이 보장되는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으니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하다가 어그러지더라도 큰 부담 없이 재기할 수 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이직이 잦다. 1년에 25%에 달하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옮긴다. 유럽에서 가장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가 덴마크다.
실직자는 실직 기간 동안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계속하거나 실무 교육 과정인 디플롬(diplom)에 참가해 전문성을 높인다. 이미 실무에서 활약하다 온 이들이 제발로 학술적?실무적 전문성을 쌓으러 왔기에 교육성과가 뛰어나다. 만일 교육을 받는 와중에 번뜩이는 사업 구상이 떠올랐다면 정부나 대학의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해 창업에 나설 길이 열려있다.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데도 덴마크의 노동 생산성이 세계 순위권에 꼽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확보해 기업이 시장 상황에 대처할 길을 열어주면서도, 정부가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두고 모든 국민에게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덴마크의 유연안전성이다. 든든한 버팀목이 있으니 덴마크 시민은 과감히 창업에 나설 수 있다.
한국은 어떤가. 소득세율은 최대 38%, 실업급여 소득대체율은 50%에 그친다. 이것이 실직자에게 ‘안전’한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마당에 해고만 ‘유연’하게 한다고 한국에 유연안전성이 싹틀 리 없는 까닭이다.
 

비교 안 하는 사회, 차별 없는 나라

덴마크 최고 소득세율은 60%에 달한다. 아르바이트만 해도 36%를 세금으로 낸다. 많은 소득세는 사회복지제도를 운영하는 마중물이 된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은 소득이 높은 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낸다. 그래서 세금을 내고 나서 손에 넣는 월급은 의사나 벽돌공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직업간 소득 격차가 작은 점은 작은 덴마크 사회를 더 끈끈하게 엮어준다. 서로 고만고만하게 산다는 사실을 아니 서로 살림을 비교하지 않는다. 소득 격차가 적을 뿐더러 서로 비교하지 않으니 돈을 적게 버는 사람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덕분에 덴마크에서는 직업을 소득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에 따라 선택한다. 창업가를 보는 사회적 인식도 긍정적이기 때문에 진로로 창업을 선택하기도 수월하다.
대학을 비롯해 학력으로 사람을 서열화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중등교육 과정과 같은 덴마크 공립기초학교(basic school)는 9학년까지다. 이 중에서 7학년 까지는 시험 점수로 등수를 매기거나 상을 주지 않는다. 이 기간에 학생은 학교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는데 매진한다. 학교 교육도 학생의 적성을 발굴하는데 방점을 찍는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여러 능력 가운데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다는 의미일 뿐이다.
덴마크 학생은 공립기초학교 과정을 마칠 때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일반 고등학교나 기술학교, 상업학교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한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외국어고나 과학고 같은 특성화고와 인문계, 실업계 학교 사이에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부분이 다르다. 한국은 명문대 진학률을 기준으로 고등학교도 서열화 돼 있다. 보통 특성화고, 인문계, 실업계 순서다. 사실상 명문대 진학이 중등교육 과정의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덴마크 교육 시스템의 구조(출처: 유네스코)

덴마크는 다르다.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에 맞춰 진로를 설계하고, 그 틀에 맞춰 고등학교를 고른다. 대학교에 진학해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다면 일반 고등학교를 간다. 이들은 고등교육 과정에 필요한 폭넓은 지식을 습득한다. 목수나 용접공 같은 일을 꿈꾸는 학생은 기술학교를 택한다. 기술학교는 교과과정 대부분이 실습이다. 실전적인 기술을 배운 이들은 대부분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한다.?경영자가 되고 싶다면 상업학교에 간다. 상업학교는 외국어와 경영, 회계 등 회사 경영에 필요한 실용적인 교과 과정을 제공한다. 전공으로 고른 외국어에 따라 해당국 학교로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프로그램도 있다.
덴마크 사회는 기술직을 높게 산다. 특히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기술직 노동자는 전문직 종사자 못지 않게 존경 받는다. 보수도 적지 않게 받는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기보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덴마크 대학 진학률은 40%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대접받고 먹고 살 수 있으니 입시 경쟁이 과열될 이유가 없다.
 

뛰어난 기업 환경

지난 16일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올해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를 발표했다. 세계 144개 나라를 재산권, 혁신, 세금, 기술, 부패, 자유, 관료주의, 투자자 보호, 주식시장 실적 등 11개 항목으로 평가했다. 1위는 덴마크가 차지했다. 2년 연속이다.
<포브스>는 덴마크가 개인 세금 부담율이 가장 높은 나라지만 기업을 경영하기는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영 자유가 보장되고 부정부패가 없다는 점이 덴마크를 1등으로 만들었다. 규제가 효율적이고 투명하다는 점도 순위를 끌어올린 요소였다.
앞선 포스트에서 설명했듯 덴마크는 법인세율이 낮다. 2015년 현재 23.5%인 법인세율을 내년에는 22%까지 끌어내린다. 법인세를 내리는 국제적 추세에 발맞춤은 물론이고 외국인 투자를 유지할 만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조치다. 법인세는 미국과 프랑스, 독일보다 낮다. 복지 제도를 국가가 운영하기 때문에 기업이 인건비 외에 따로 부담해야 하는 복지 비용이 없다.
외국인이 덴마크에 투자하기도 간편하다. 사실 덴마크에는 외국인 투자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덴마크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차별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투자 분야에도 제한이 없다. 뒤집어 말하면 덴마크에 투자한 외국 기업에 특혜를 주는 제도도 없다.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금융 자산을 확보하는 일도 덴마크 기업과 동일한 법인세율을 적용받는다. 제도적으로는 외국인 투자나 내국인 투자나 같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청 ‘덴마크 창업생태계 현황조사 보고서’ 덴마크편 33쪽

덴마크에서 창업하기는 퍽 간편하다. 자본금 1크로네(170원)만 있으면 회사를 차릴 수 있다. 사실상 자본금 규제가 없는 셈이다. 창업할 때 덴마크에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1인 기업을 세우려면 거주 및 근로 자격(Residence and Work Permit)을 받아야 한다. 그린카드(greencard) 등으로 상기 자격을 갖출 경우 의료, 복지, 교육 등에서 덴마크인과 같은 혜택을 받는다. 처음 자격을 신청할 때 신청자의 나이와 경력, 언어 능력, 학력, 덴마크 사회에서 수요 등을 평가한다. 각 항목에 따라 받은 점수 합계가 일정 기준을 넘어설 경우 그린카드를 내준다. 처음에는 3년까지 자격을 주고 재신청할 경우 최장 4년까지 자격 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다.
 

깨끗하고 효율적인 규제 환경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다. 매년 세계 부패 인식지수를 평가하는 국제투명성기구는 덴마크가 세계 174개국 가운데 가장 부정부패가 적은 나라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슬로베니아와 라트비아, 말타 사이인 43위였다.

국제투명성기구가 2014년 실시한 세계 부패 인식도 조사 결과. 순위가 높을 수록 청렴하다는 뜻이다. 덴마크는 1위. 한국은 43위였다. 최하위는 북한 등이다 (출처: Curruption Perception Index 2014)

국가가 청렴하니 국민도 정부를 믿고 따른다. 정부와 사법부 신뢰도가 세계 평균을 훌쩍 상회한다. 덴마크가 고비용 고복지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가 믿음직하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는 ‘2016년 사업하기 보고서(Doing Business 2016)’에서 “덴마크의 사례는 규제의 효율성과 질이 동반될 경우 어떻게 선순환되는지를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유럽 시장 접근성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럽 대륙 중간에 자리한다. 덴마크에 회사를 차리면 양쪽 시장을 모두 노려봄 직하다. 2000년 수도 코펜하겐과 스웨덴 말뫼 지역을 연결하는 외레순 다리를 완공한 뒤 두 지역은 단일 경제권으로 묶였다.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출퇴근하는 일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2021년까지는 덴마크 남부와 독일을 연결하는 터널을 지을 예정이다. 유럽 본토와 접근성이 한층 개선된다는 얘기다. 지금도 국제 공항 세 곳에서 비행기를 타면 서너 시간 안에 유럽 모든 국가에 가 닿는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은 2014년 6월 단일특허제도를 시행하고 통합특허법원을 세웠다. 여기에 한번만 특허를 등록하면 25개 회원국 어디서나 특허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덴마크에 진출한 기업은 EU 회원국 사이의 관세 혜택도 덴마크 기업처럼 인정받는다.
 

우수한 인력

덴마크는 비영어권 국가 가운데 가장 영어를 잘 하는 나라 중 한 곳이다. 공용어는 덴마크어지만, 국민 80%가 영어를 구사한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등 다른 북유럽 국가와 비교해도 덴마크 국민의 영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다. 영어말고도 전국민 53%가 독일어, 25%가 스웨덴어, 10%가 프랑스어를 쓸 줄 안다.
언어능력뿐 아니라 기술 숙련도도 출중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덴마크는 전통적으로 기술전문가를 높이 사는 나라다. 교육 제도 덕분에 노동자가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로 성장할 토양도 마련돼 있다. 또 노동자가 스스로를 전문가로 여기기 때문에 중간 관리자 없이 알아서 업무내용을 파악하고 목표를 설정해 일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덴마크 노동자가 동기부여가 잘 돼 있는 우수한 인력이라고 평가했다.

IMD World Talent Report 2015. 4쪽 (출처: IMD World Competitiveness Center 웹사이트)

참고자료

편집자 주: 북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를 둘러보는 이 기획 콘텐트는 ‘안데르센의 유럽 표류기‘라는 제목으로 은행권청년창업재단 D.CAMP 블로그에도 함께 게재합니다. D.CAMP에 올라간 글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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