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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풍자했던 ‘윌란스 포스텐’, 이번에는 오성홍기 패러디해 중국 정부 공식 항의 받아

덴마크 일간지 <윌란스 포스텐>이 중국 국기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그려 넣은 만평을 게재해 논란이 일었다. 중국 정부는 <윌란스 포스텐>에 공식 사과하라고 요구했으나, <윌란스 포스텐>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사과할 뜻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 상황을 두고 시민 권리를 제한하는데 민감한 덴마크에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박이 벌어진다. 덴마크는 언론 자유가 잘 보장되기로 세계에서 손 꼽힌다.

오성홍기에 별 대신 바이러스 그려 넣은 만평 게재

<윌란스 포스텐>(Jyllands-Posten)은 149년 역사를 자랑하는 덴마크 유력 신문사다. 1월27일자 신문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에 별 다섯 개 대신 코로나 바이러스를 그려 넣은 만평을 실었다.

문제는 온라인에서 불거졌다. <윌란스 포스텐>이 이 만평을 트위터로 공유하자 중국계 트위터 사용자가 거칠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만평이 전염병에 시달리는 중국인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줬다고 비판했다. 덴마크 국기 단네브로에 똥이나 나치 상징 하켄크로이츠를 합성한 그림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맞불을 놓는 움직임도 일었다. <윌란스 포스텐> 공식 SNS 계정에도 중국계로 보이는 봇(bot)이 항의 댓글을 쏟아부었다.

덴마크인 중에도 이 만평을 곱지 않게 보는 이가 속속 나타났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는 지켜야 하나 이번에는 도가 지나쳤다”거나 “중국인의 고통을 한낱 농담거리로 만든 짓”이라고 꼬집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대응에 나섰다. 덴마크 주재 중국대사관은 27일 당일 이 만평이 “중국을 모욕하고 중국 인민의 감정을 해쳤다”라며 <윌란스 포스텐>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펑 티어(Feng Tie) 주 덴마크 중국 대사는 해당 만평이 중국에 고통을 안겨줬기 때문에 신문사와 만평가 모두가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DR>과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다른 사람이나 국가를 해치면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용납할 수 없으며, 무자비하고 이기적인 짓이죠. 표현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명분으로 마무 말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 덴마크 사회가 인종차별 발언이나 여성이나 장애인을 차별하는 얘기를 허용할 거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게 제 논점입니다. 한계가 있다는 거죠.”

무함마드 풍자 만화 실어 테러 대상된 신문사

이번 사태에 불을 당긴 <윌란스 포스텐>은 타 문화권을 풍자하는 만평을 실어 덴마크를 외교 위기에 빠뜨린 전적이 있다.

2005년 9월 <윌란스 포스텐>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Muhammad)와 종교 지도자 이맘(imam)를 우스꽝스럽게 그린 만평 12점을 게재했다. 무함마드는 폭탄이 든 터번을 쓰고 있었다. 이 그림을 본 덴마크 내 이슬람 교도는 분노했다. 덴마크 내 지식 사회에서도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나왔으나 <윌란스 포스텐>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이듬해인 2006년 초 <윌란스 포스텐> 반대 시위는 중동 일대로 번졌다.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는 덴마크에서 자국 대사를 철수했다.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는 덴마크 상품 불매운동도 벌어졌다. 덴마크 정부는 본의 아니게 역사상 가장 큰 외교 위기를 맞닥뜨렸다.

<윌란스 포스텐>은 끝내 손을 들었다. 이슬람 교도를 희화화한 점을 사과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지닌 언론사로서 해당 만평을 출판할 권리도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2003년 4월 <윌란스 포스텐>이 만평가에게 예수를 희화화한 그림을 받고는 게재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2006년 뒤늦게 드러나 ‘이중잣대’를 휘둘렀다는 비판까지 받아야 했다.

무함마드 풍자 만평을 출판한 뒤 <윌란스 포스텐>은 숱한 테러 위협에 시달렸다. 2008년과 2010년 <윌란스 포스텐>은 두 차례 테러 당할 위기를 모면했다. 2008년 2월에는 만평가를 살해하려던 일당 3명이 체포됐다. 2010년 9월에는 신문사로 배달되기로 한 편지 폭탄이 인근 호텔에서 터졌다. 덴마크와 스웨덴 정보기관이 협업해 범인 5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코펜하겐 <윌란스 포스텐> 편집국 임직원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죽이려 했다”라고 털어놓았다.

“풍자는 풍자, 사과할 일 없어”

<윌란스 포스텐>은 이번에 오성홍기를 풍자한 만평이 사과할 일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중국에서 발현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로 퍼지는 현상을 한눈에 보여주고자 오성홍기를 차용했을 뿐, 악의적 의도는 없었다며 풍자화를 풍자로 보라고 요구했다. 야콥 뉘브뢰(Jacob Nybroe) <윌란스 포스텐> 편집장도 중국 정부의 비판을 일축하며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사과 받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만평은 악의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국기와 코로나 바이러스를 함께 그림으로써 우리 신문은 지금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을 묘사하려 했습니다. 이것 뿐입니다.”

덴마크 정계, 한 목소리로 자국 언론사 응원

덴마크 정계도 여야를 막론하고 <윌란스 포스텐>의 입장을 지지했다.

메테 프레데릭센(Mette Frederiksen) 덴마크 총리는 “덴마크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풍자화를 그리는 유서 깊은 전통도 있다”라며 “우리는 이 전통을 지켜갈 것”이라고 못 박았다.

예페 코포(Jeppe Kofod) 외교부 장관은 “(외교부 장관으로서) 내가 만평을 두고 논박을 벌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며 “덴마크에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중국 역시 이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쇠렌 포울센(Søren Pape Poulsen) 보수인민당(Det Konservative Folkeparti) 대표 역시 “중국의 반응이 마치 무함마드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며 “언론사의 편집 방향을 이유로 중국 정부가 사과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우페 엘베크(Uffe Elbæk) 대안당 대표(Alternativet)는 중국 정부가 서구 언론사 보도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중국은 어디서나 같은 대응 방식을 반복합니다. 최근에 중국 정부가 스웨덴 언론사를 압박하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덴마크 차례인거죠. 굳건히 자리를 지키세요 JP(윌란스 포스텐).”

국영신문 중국일보, “서구권 또 중국 악마화”

중국 국영신문 중국일보(China Daily)는 1월28일 국제판에 “덴마크 만평가가 오성홍기를 모욕하며 제 얼굴에 침을 뱉었다”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을 쓴 장 주상(Zhang Zhouxiang) 기자는 “이 만평은 특정 서구권 국가가 중국을 악의적으로 묘사하는 안타까운 사례”라며 “현대 윤리의 기본을 이해하는 누구라도 이 그림이 얼마나 모욕적인지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덴마크 시민은 착합니다. 그 만평이 덴마크인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만평은 만평가의 입장만 대변할 뿐이며, 그의 옹졸함을 보여줬지요. […] 우리는 덴마크인의 도덕성을 믿습니다. 덴마크에서 이 만평이 전혀 지지받지 못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중국에서 불거진 항의와 비난은 차치하고도, 그 만평은 덴마크에 의식 있는 사람들에게 비난만 받을 겁니다. 모든 현대 문명 사회가 공유하는 원칙이 있고, 한 국가를 모욕하는 일은 명확히 그 원칙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펑 티어(Feng Tie) 주 덴마크 중국 대사 역시 <DR>과 인터뷰에서 사과를 요구한 대상이 덴마크 정부가 아니라 만평을 게재한 <윌란스 포스텐>과 그 만평을 그린 작가임을 강조했다.

ande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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