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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지방법원, 헌정 사상 최초로 ‘조폭’에 해산 판결

덴마크 법원이 조직 폭력 단체(조폭) ‘로얄 투 파밀리아'(Loyal to Familia・LTF)에 해산하라고 명령했다. 시민이 결성한 단체에 법원이 해산 명령을 내린 일은 1849년 덴마크 헌법 제정 이래 처음이다.

LTF, 코펜하겐 총격 사건 장본인

LTF는 코펜하겐 뇌레브로(Nørrebro)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폭력 단체다. 2017년 3월 두목 슈아입 칸(Shuaib Khan)이 출소 한 뒤 그해 여름부터 수도 코펜하겐과 덴마크 2대 도시 오르후스에서 다른 폭력 단체와 세력을 다툼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십 차례 총격 사건을 벌여 인명 사고를 야기했다. 덴마크 대법원(Højesteret)은 슈아입 칸이 앞으로 덴마크에서 상당히 위험한 범죄를 계속 저지르리라 볼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며 2018년 11월 그를 덴마크에서 추방했다. LTF는 한 때 240명이 넘는 조직원을 거느렸으나 두목이 추방당한 뒤로 세가 크게 기울었다. 소송 문건에 따르면 현재 조직원은 79명이다.

코펜하겐지방경찰청(Københavns Politi)은 2018년 9월4일부터 LTF에 임시 활동 금지령을 발효했다. LTF 로고를 세긴 티셔츠나 외투를 입고 다니는 등 LTF를 홍보하는 일체 행위까지 경찰이 단속하기 시작했다. 또 경찰은 LTF가 헌법에 반하는 활동을 벌인다며 기소했다.

덴마크 헌정 사상 최초 불법 단체 해산 판결

2019년 2월6일 시작한 소송은 1년 가까이 지난 올 1월에야 첫 매듭을 지었다. 증인 59명이 소환되고, 1만3천 쪽짜리 보고서가 작성됐다.

검사는 LTF 조직원에게 유죄가 확정된 사건 30여 건을 다시 검토해 사건 109건에 혐의를 확인해 유죄 판결을 받으며 LTF를 압박했다. 수감 기간으로 치면 모두 344년에 달하는 성과다.

법원도 경찰 손을 들어줬다. 2020년 1월24일 코펜하겐지방법원(Københavns Byret)은 LTF을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해산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LTF가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78조에 반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판결로서 해산을 명령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정했다. 법원 판결로 시민이 결성한 단체를 해산하는 일은 덴마크 헌정 171년 만에 처음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헌법 제78조 1항과 2항을 인용했다. 1항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며 모든 시민이 합법적 목적을 추구하는 단체를 결성할 권리는 지닌다고 말하지만, 2항은 단체의 목적이 불법적일 경우 법원 판결로 해산할 수 있다고 밝혀 적었다.

경찰의 활동 금지령은 법원 해산 판결로 대체한다.

LTF 항소, 대법원 진출 예상

이번 판결로 LTF 해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LTF 측 변호사 미카엘 에릭센(Michael Juul Eriksen)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덴마크 동부고등법원(Østre Landsret)에 항소했다.

다수 덴마크 미디어는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이번 소송이 대법원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덴마크 헌정 사상 최초로 특정 민간 단체 해산을 법원이 결정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덴마크 헌법 제78조

1항. 시민은 어떠한 합법적 목적으로든 사전 허가 없이 단체를 결성할 권리를 갖는다.
2항. 불법 행위, 불법 행위 조장 혹은 타인에게 유사한 범죄를 부추기거나 그러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를 지닌 단체는 법원 판결에 근거해 해산한다.
3항. 정부 조치로는 어떠한 단체도 해산할 수 없다. 그러나 임시로 특정 기간 동안 활동을 금지할 수 있다. 활동 금지령은 즉시 발효하고 해산 전까지 유효하다.
4항. 정치 단체 해산은 반드시 특별 권한 없는 대법원에서 다룬다.
5항. 해산건의 법적 효과는 법으로 강제한다.

정계, 환영과 무용론 엇갈려

법무부 장관이던 2017년 가을부터 LTF를 퇴치하겠다고 팔 걷고 나선 쇠렌 포울센(Søren Pape Poulsen) 보수인민당 대표는 <DR>과 인터뷰에서 “오늘은 정말로 행복해도 될 것 같다”라며 “거대한 진보이자 덴마크 법 역사에 기록될 사건”이라고 법원 판결을 반겼다.

“저는 늘 이런 결론을 예상했습니다. LTF를 해산할 수 있다면 다른 (범죄) 단체나 조직도 살펴봐야겠습니다.”

소송을 이끈 코펜하겐지방경찰청 소속 이다 쇠렌센(Ida Sørensen) 검사장(Chefanklager)은 “이번 판결은 범죄 단체와 조직 범죄에 맞서 싸우는데 주춧돌이 될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했다.

2019년 총선으로 정권을 탈환한 사회민주당(Socialdemokratiet) 소속 법무부 장관 닉 헤케루프(Nick Hekkerup) 역시 판결을 보고 “무척 기쁘다”라고 <리쳐>와 인터뷰에서 소감을 밝혔다. 전임 장관이 지적했듯 닉 헤케루프 장관도 LTF 해산 판결이 확정될 경우 다른 범죄 조직을 금지할 길이 열리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사민당 단독 정부 구성을 지지한 적녹연맹당(Enhedslisten)은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로사 룬(Rosa Lund) 적녹연맹당 대표는 이 판결이 최종심이 아니기 때문에 평론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법으로 범죄 조직을 해산시키는 조치가 과연 효용성이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이름을 못 쓰게 한다고 범죄 조직을 소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유형의 단체를 불법으로 규정한 독일 사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어요. 오히려 범죄 사회에 결속력만 끈끈해지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범죄 조직을 와해시키는 것이죠.”

참고 자료

ande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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