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케호이스콜레 세미나]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에서는 ‘나’를 배운다”

“모든 학생이 ‘나 자신에 관해 많이 깨달았다’라고 말해요. 폴케호이스콜레에서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면서 가장 많이 얻는 점이 자기를 이해한다는 거죠.”
폴케호이스콜레에서 기숙 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배우냐는 질문에, 얼핏 역설적인 답이 돌아왔다. 집체 생활 속에서 오히려 자기를 더 깊이 이해한다는 대답에서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folkehøjskole)에서 경험이 한국 사회에서 집단생활과 결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 느껴졌다. 5월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위워크 선릉역2호점에서 NAKED DENMARK가 자유학교, 보세이호이스콜레(Boseihøjskole)와 함께 주최한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 세미나 2019 무대에 선 이해견 씨가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를 설명하며 나온 이야기다.
이해견 씨는 16년간 영어 교사로 교편을 들다 한국 교육 현실에 한계를 느끼고, 학생으로서 덴마크 국제 폴케호이스콜레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ege)에 다녀와 뜻 맞는 이와 한국에서 한국식 폴케호이스콜레 자유학교를 함께 꾸리는 중이다. 이해견 씨는 두 번째로 발표에 나서 한국에는 생소한 폴케호이스콜레라는 덴마크 교육기관을 한결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그 내용을 7문7답으로 다시 정리했다.
 

폴케호이스콜레는 고등학교인가?

아니다. 오히려 대학에 가깝다.
영어로 민중고등학교(folkhighschool)라고 직역한 문헌 때문에 고등학교로 오해하곤 하는데, 덴마크에서 하이스쿨(højskole)은 한국에서 중등교육 기관에 해당하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대학(college)에 준하는 고등교육 기관을 일컫는 말이다. 국내에 덴마크 교육 권위자로 널리 인정받는 성공회대학교 고병헌 교수는 폴케호이스콜레를 ‘평민대학’으로 번역한다.
 

폴케호이스콜레 입학 자격은 무엇인가?

입학 자격 없다. 입학 시험도 없다. 나이 제한만 있다. 덴마크 나이로 만 17.5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다. 나이는 최소 기준만 있을뿐, 상한선은 없다.
입학 에세이를 제출하라는 등 학교마다 요구 사항이 있긴 한데, 입학 자격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폴케호이스콜레는 학위를 주나?

안 준다. 졸업하면 졸업장이라고 증서를 한 장 주긴 하는데, 어디 가서 증빙서류로 쓸 수도 없는 종이일 뿐이다. 시험도 없다. 점수로 평가하지 않으니 경쟁도 없다. 법적으로 직업 교육도 못하게 돼 있으니 폴케호이스콜레 졸업장이 무엇을 증빙하겠나.
 

대학이라면 무엇을 전공하나?

전공 없다. 대학의 아카데미즘에 반해 탄생한 곳이라 흔히 대학에서 학생이 따라가는 교육 과정으로서 전공은 없다. 물론 주요 관심사를 중심으로 특정 분야를 탐구하는 과정은 존재한다.
 

그럼 도대체 폴케호이스콜레에 가면 무엇을 하나?

폴케호이스콜레 학기는 보통 3~6개월짜리다. 이곳에서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먹고 자고 함께 생활한다. 이런 곳에서 뭐하겠나?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러 다닌다. 파티도 많이 한다. 파티 가다보면 당연히 술도 많이 마신다. 붙어 있는 시간이 긴 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보통 “너는 여기 왜 왔어?”부터 시작한다. 그러면 보통 세 부류로 나뉜다. 친구 사귀려고, 좀 쉬면서 앞으로 방향을 생각하려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더 이해하려고.
모든 폴케호이스콜레 학생이 마지막에 가장 많이 얻어가는 건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았다’라고 한다. 폴케호이스콜레에서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면서 가장 많이 얻는게 스스로를 이해한다는 거다.
자기정체성을 일깨우는 교과목이 따로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덴마크인은 나 자신에 관한 이해와 더불어 내가 사는 사회도 이해해야 나를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자기를 이애하려고 춤 추고 그림 그리고 시도 읽는 등 다양한 예술 작업도 하면서 젠더나 인권, 권리를 토론하고 역사와 사회도 논한다.
한마디로 폴케호이스콜레는 사회 속에서 나와 개인으로서 나를 함께 풍성하게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고 보면 되겠다. 기숙사에서 같이 살며 살아 숨쉬는 말로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나눈다.
또 상호 배움을 중시한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내 스승이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나 혼자 있을 때보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상대방을 통해 내가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상호 배움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함께 의논하고 고민하고 깊이 생각하는 곳. 이게 폴케호이스콜레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폴케호이스콜레가 덴마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1844년 독일 접경 지역에서 처음 탄생한 폴케호이스콜레 학생은 대다수가 농민이었다. 덴마크 국왕이 1788년 농노를 해방시키며 영주의 농토에 달린 재산이었던 사람들이 독립적이고 주체적 인간으로서 살 수 있게 된 거다.
이런 농민들이 온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쳤겠나? 농민이니까 농사의 기술? 아니다. 덴마크어와 덴마크 역사, 세계사를 배우며 덴마크 민중으로서 정체성을 깨닫고, 그림그리고 노래하고 춤 추고 운동하며 인간으로서 자신을 풍성하게 느꼈다.
이런 폴케호이스콜레가 당시에 상당히 성행해 한 때 덴마크 전역에 170여 곳이 있었다. 한국 상황에 빗대 설명하자면,수도권에 800~900개 폴케호이스콜레가 생긴 셈이다. 덴마크 인구가 한국 10분의1이다. 주민자치센터보다 폴케호이스콜레가 더 많은 정도였다는 얘기다.
농번기에는 농사 짓고, 농한기에는 모여 공부하고. 낮에는 학교 건물 짓고 저녁에는 토론했다. 이렇게 농민이 시민으로 자각했다. 시민으로 자각한 농민이 집에 돌아가서 그 유명한 협동조합 운동을 일으킨다. 협동조합이 제일 처음 시작한 곳은 영국이지만 대중운동으로 대대적으로 퍼진 나라는 덴마크다. 어떻게 해야 농민이 농축산물을 더 잘 팔아서 생활 수준을 높이고 더 많은 권리를 쟁취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 협동조합으로 풀어냈다. 그 결과 덴마크 사회에 평등감과 공생 의식이 널리 퍼지며 사회복지제도가 자연스레 정착했다. 폴케호이스콜레를 졸업한 농민이 스스로 삶으로 덴마크 사회에 평등감과 공생 같은 가치를 실천적으로 보여주며 지금 같은 역사를 만든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폴케호이스콜레는 대안학교인가?

아니다. 한국 대안학교와 결이 다르다. 정부 인가 여부를 기준으로 보면 폴케호이스콜레도 덴마크 정부에 인가를 받고, 정부 지원금도 수령한다. 덕분에 학생은 비싼 덴마크 물가에서 조금은 자유롭다. 외국인인 나도 학비 3분의2를 지원 받았다. 덴마크는 폴케호이스콜레나 에프터스콜레 같은 기관도 포섭해 사회를 풍성하게 일굴 수 있도록 많은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래서 두 부류 학교도 대안학교가 아니다. 인가학교다.
물론 정부가 아니라 개인이 세웠으니 사립학교는 맞다. 사립학교도 정부 지원금 받는다. 폴케호이스콜레는 학생 수를 몇 몇 이상으로 유지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 170여 개에 달했던 전성기를 지나 지금은 67개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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