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공영방송, 총선 앞두고 정치 성향 반대인 사람과 일대일로 만나는 ‘국민 소통 대회’ 개최

덴마크에서는 총선 전에 국민 소통 대회가 열린다. 서로 반대 의견을 지닌 이가 직접 만나 소통하며 정파를 뛰어넘어 근본적 가치를 논의하며 민주주의의 정수를 되짚는 자리다.
덴마크 공영방송 <DR>은 2019년 6월5일 덴마크 국회의원 총선거 전 마지막 휴일인 6월2일 일요일 전국 단위 일대일 소통 대회를 연다. 일명 ‘반대와 함께‘(Uenige Sammen) 프로그램이다. 지난 2월 덴마크 전역에서 학생 4천 여 명이 참가하며 성공을 거둔 ‘반대와 함께’ 프로그램을 이번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3천여 명이 신청해 사전 신청은 마감됐다.
‘반대와 함께’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민주주의의 근본인 다양성과 상호존중을 되새기자는 소통 대회다. 온라인으로 참가 신청하며 질문지를 작성해 보내면, 주최 측이 답변을 바탕으로 신청자의 성향을 분석해 인근 지역에서 정반대 성향을 지닌 다른 신청자와 짝을 지어 준다.
두 사람은 6월2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DR> 지사 9곳이나 도서관, 카페 등 덴마크 전역 공공장소 20여 곳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전국 국민 소통 대회 '반대와 함께'(Uenige Sammen) 배너 광고. "언제 마지막으로 자신과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과 얘기 나눴느냐"라고 묻는다
전국 국민 소통 대회 ‘반대와 함께'(Uenige Sammen) 배너 광고. “언제 마지막으로 자신과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과 얘기 나눴느냐”라고 묻는다

 

반대편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필터 버블을 깨부수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본인과 비슷한 사람을 위주로 만난다. 학교나 직장이나 동호회 등에서도 배경이나 교육 수준, 소득, 계층, 가치관, 거주 지역, 인종 등이 유사한 사람과 어울린다. 이러다 보면 자신의 의견이 사회에 보편적으로 통용된다고 손쉽게 단언한다. 위험한 착각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보편화되며 사용자 맞춤으로 정보를 제공해 사용자 개개인을 자기 성향과 유사한 환경에 가둬버리는 일명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이 보편적인 요즘 한국을 물론이고 국제 사회 여론이 양극화되는 것도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성향이 한층 강화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와 함께’ 소통 대회는 성향이 반대인 두 사람이 직접 만나 대화하는 프로그램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상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궁금해하며, 묻고, 배우도록 북돋는 것이 목표다. 토론 대회가 아니기에 나와 의견이 반대인 사람이 만나도 자기 입장이 옳다고 우기며 상대를 설득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어떻게 말문을 여나

반대파와 만나 대화하고 싶다는 뜻을 품고 직접 ‘반대와 함께’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기와 성향이 정반대인 사람과 대화하기란 쉽지만은 않을 테다. <DR>도 이 점을 우려해 코펜하겐대학교에서 정치적 논증과 토론을 연구하는 크리스티안 코크(Christian Kock) 수사학 교수와 반대파끼리도 충돌하지 않고 깊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연구해 공유했다.
첫 번째, 놀랄 준비를 하라. 자기의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으로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상대를 재단하지 말라. 상대의 말에 기꺼이 놀랄 준비를 하라. 사람은 복잡한 존재다. 한 가지 의견만 듣고 그 사람의 가치관을 지레 짐작하지 말라. 크리스티안 코크 교수는 “우리가 정반대 성향을 지닌 사람을 짝지어주는데도, 사실은 굉장히 많은 곳에서 두 사람이 동의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호기심을 품고 질문하라. 바로 정치적인 주제로 뛰어들기보다, 당신의 배경을 설명하며, 그것이 당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주며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편이 좋다. 크리스티안 코크 교수는 “상대가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서로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더 쉽게 납득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공통점을 찾아라. 대화가 갈등으로 치달으면 방향을 틀어라. 열린 질문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라. 그리고 상대방이 그런 입장을 갖게 된 이유를 헤어리고, 왜 갈등이 불거졌는지 되새겨 보라. 많은 경우 겉으로 갈등하는 사람도 갈등 아래 근본적인 가치에는 동의한다. ‘반대와 함께’ 프로그램의 원조인 독일 소통 대회를 연구하며 크리스티안 코크 교수는 100%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같은 가치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공통점을 찾기 수월하죠. 사실 구체적인 정치적 의견 아래에서는 어떤 가치나 의견에 동의해요. 이를 탐구한다면 언제나 훌륭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네 번째, 관심을 보여줘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대화가 풀리길 원한다면, 신체 언어(body language)나 상대의 말을 따라하면서 당신이 상대에게 관심이 있음을 보여줘라. 눈빛이 살아 있고, 머리를 약간씩 움직여라. 구체적인 무언가를 알고 싶을 때는 언제나 열린 질문을 해야 함을 명심하라. 크리스티안 코크 교수는 “이민 같이 예민한 이슈에 상대의 의견을 묻고 싶다면, 보편적이고 관념적인 개념 말고 구체적인 예시나 개인적 경험을 물어보라”라고 조언했다.
다섯 번째, 나쁜 모델은 피하라. ‘반대와 함께’ 소통 대회는 2019년 덴마크 총선 직전에 열린다. 전국에서 정치 대회가 열리고 온갖 의견이 쏟아진다. 정치인은 정책을 논의하며 그걸 밥줄로 삼지만 그들의 대화 방식은 결코 본받을 만하지 않다고 크리스티안 코크 교수는 경고했다.
“저한테 한 마디로 요약해달라고 하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릴게요. 정치인이 토론에서 하는 정 반대로만 하세요.”
정치인은 토론에서 상대의 약점을 찾아 공격해 굴복시키려 안달이다. 좋은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소셜미디어(SNS)도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SNS 사용자는 상대방에게 자기 입장을 가르치려 든다. 크리스티안 코크 교수는 그냥 질문하고 호기심을 갖기만 해도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섯 번째, 먹고 마셔라. 상대방과 함께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시는 일만으로도 긴장이 풀리고 대화가 쉬워진다. 크리스티안 코크 교수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 상대와 다른 관계를 맺게 되며, 다른 상황에 활성화될 뇌 중추에 불이 켜진다”라고 설명했다.
대화가 예상보다 훨씬 힘들 수도 있다. 불쾌한 대화를 굳이 붙들고 늘어질 이유는 없다. 해외 사례 중에는 20분 만에 떠난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몇 시간이나 대화를 이어간 짝도 있었지만 말이다.
대화를 매듭짓는 좋은 방법으로 함께 사진을 찍기를 추천한다. 서로 견해는 다를 지라도 열린 자세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음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시작한 ‘우리 나라 이야기’ 덴마크 판

<DR>은 ‘우리 나라 이야기‘(My Country Talks)라는 유럽 차원 프로젝트와 협업해 올해 첫 ‘반대와 함께’ 소통 대회를 준비했다.
독일 일간지 디 차이드(Die Zeit)는 정치적 견해가 반대인 사람의 데이트 플랫폼을 만들었다. 이 플랫폼을 활용해 정치 견해가 반대인 사람끼리 면대면 대화를 중개하는 독일 이야기(Germany Talks) 프로그램을 2017년 개설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17년 6월18일까지 독일 전역에서 1,200명이 직접 만나 대화했다.
이 사례를 보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 자국 이야기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디 차이드는 구글에서 자금을 지원 받아 ‘우리 나라 이야기’ 프로그램을 개발해 핀란드와 오스트리아 등에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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