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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예술가, 미술관에 노숙자 ‘전시’한다

덴마크 란데르스미술관(Randers Kunstmuseum)이 4월12일부터 영국인 노숙자 4명을 ‘전시’한다. 네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로 노숙자가 됐으나, 모두 코카인이나 헤로인 등 마약에 의존하며 사는 처지다. 이들은 전시기간 중 금단증세를 예방하려고 마약 중독 치료제로 쓰는 마취제 메타돈(methadone)까지 챙겨왔다.
 

크리스티안 폰 호른슬레스

생전 영국을 떠나 본 적 없는 마약 중독 노숙자를 덴마크로 데려와 ‘전시’하는 이는 예술과 정치 권력에 ‘돌직구’ 던지는 콘셉트 아티스트 크리스티안 폰 호른슬레스다.
크리스티안 폰 호른슬레스(Kristian von Hornsleth)는 사회부조리를 꼬집는 작품 활동으로 이름을 날린 덴마크 콘셉트 예술가다. 정치・조직・사회경제적 문제를 직설적으로 노출하고 관객의 지배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기득권을 비판한다. 성 가운데 ’s’자를 달러($)로 바꾼 글자(Horn$leth)를 서명으로 쓴다.

덴마크 콘셉트 아티스트 크리스티안 폰 호른슬레스(Kristian von Hornsleth)

오는 주말 그는 런던에서 노숙자 네 사람과 비행기를 타고 덴마크에 온다. 란데르스미술관에서 ‘슈퍼 크래시’(SUPER CRASH)라는 전시회를 열기 위해서다. 노숙자 4명은 유리 전시관 안에 ‘전시’될 예정이다. 호른슬레스는 노숙자가 스스로 복지 체계의 실패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참여하 작품 값의 절반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네 노숙자 앞으로 적립된 돈은 3만 크로네(516만 원)다. 호른슬레스는 전했다.
“슈퍼 크래시 전시는 파괴된 인간을 보여줄 겁니다. 모든 인간은 소멸하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일등석에서 소멸할 겁니다. 온갖 작업이 뒤죽박죽 섞인, 유리조각 속을 뒹구는 놀이공원 같은 전시가 될 겁니다.”
슈퍼 크래시는 거대한 실험 작품이 될 예정이다. 미술관이 논란이 가득한 전시를 진행하고, 받은 혹평마저 전시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될까. 호른슬레스는 란데르스미술관에서 전시에 관한 폭넓은 권한을 위임받았다. 9개 전시관에는 인간의 소멸을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다. 사진, 설치물, 영화, 그림, 도예, 소품 등 1999년부터 지금까지 호른슬레스의 작업물을 망라해 작가로서 그를 반추하는 성격도 지닌다.

 

당신의 이름 값은?

크리스티안 폰 호른슬레스는 ‘호른슬레스 마을 프로젝트’(Hornsleth Village Project)로 국제적으로 인지도를 얻었다. 2006년 6월 우간다 한 마을에서 성씨를 ‘호른슬레스’로 바꾼 주민에게는 가축 한 마리를 주기 시작했다. 현지 공무원이 10월 도덕적인 이유를 명분으로 프로젝트를 중단시킬 때까지 4개월 만에 마을 주민 340명이 자기 성씨를 포기하고 가축을 받았다. 270명은 돼지를, 70명은 염소를 각자 한 마리씩 받았다. 호른슬레스는 마을 이름까지 바꾸길 기대했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순수히 상업적 거래였다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대가로 마을 주민에게 비용을 지불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해 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우리가 당신을 도울 수 있지만, 당신을 소유하고 싶다’(We Can Help You, But We Want To Own You)라는 사진전을 열고 호른슬레스 마을 프로젝트에서 촬영한 사진을 전시했다. 마을 주민 대다수는 2008년께 원래 성씨로 돌아갔다.

호른슬레스 마을 프로젝트(Hornsleth Village Project) (웹사이트 갈무리)

2008년에는 군수업체 HAIC(Hornsleth Arms Investment Corporation)를 차리고 덴마크인에게 주식을 팔기도 했다. 그림 100점을 만들고 한 점당 3천~2만 파운드(450만~3천만 원)에 팔았다. 작품 한 점은 HAIC 지분 1%이기도 했다. “전쟁과 예술을 함께 사랑하라”는 냉소적인 광고문구에서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HAIC(Hornsleth Arms Investment Corporation) 증권 증서(HAIC 제공)

 

덴마크 미술관 첫 전시

란데르스미술관은 현대 덴마크 예술을 폭넓게 다룬다. 특히 주류에서 벗어나 도전하는 덴마크 예술가에게 활동 무대를 제공하며 예술의 정의를 되묻는 전시를 애호한다. 슈퍼 크래시는 크리스티안 호른슬레스가 덴마크 미술관에서 처음 진행하는 전시다.
“제 예술은 언제나 모든 권위적 공식 체계와 맞섰습니다. 문화협회부터 지배적 정치 권력을 지닌 지도자까지요. 제게 건강한 문화란 권력에 당당히 문제를 제기하면서 더 나은 더 민주적인 포괄적 미래로 가는 새로운 길을 드러내는 겁니다.”

Kristian von Hornsleth: Fuck Your Art Lovers # 01, 1999. Neon Sign. 80×80 cm. (Hornsleth Studio 촬영)

영국인 노숙자는 전시 기간 중 첫 주말에만 ‘전시’된다. 호른슬레스는 정확한 전시시간을 예고하지 않았다. 전시기간 중 이들은 호른슬레스가 란데르스 시내 중심부에 잡아준 호텔에 묵는다. 전시기간이 끝나 런던 거리로 돌아간 노숙자에게 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아 전시장에서 계속 그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전시도 검토 중이다.

ande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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