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댓글부대’ 동원해 경쟁사 공격한 업체 공공사업서 배제 검토

덴마크 정부가 기소 당한 기업을 공공사업에서 장기간 배제하도록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달 덴마크 최대 구급차 운영업체 팔크(Falck Danmark)가 시장에서 과점적 위치를 남용해 경쟁업체를 밀어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현행법으로 처벌 수위가 너무 낮아 여전히 대다수 지역에서 구급차를 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DR>이 2월10일 보도한 소식이다.
 

덴마크 최대 구급차 운영사, 조직적 여론전으로 경쟁사 공격

2015년 네덜란드 구급차 운영업체 비오스(BIOS Ambulance Service Danmark)는 덴마크 남부지역자치단체(Region Syddanmark)에서 구급차 운영권을 넘겨 받았다. 하지만 1년 만인 2016년 비오스는 파산했다. 근무 당번을 유지할 만큼 구급차 운전자를 고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산 당시 비오스는 지자체에 6340만 크로네(108억 원)를 빚진 상태였다.
비오스가 덴마크 시장에서 두 번째로 큰 구급차 운영업체가 된 지 1년만에 파산한 까닭은 경쟁사인 팔크가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남용해 몰아세운 탓이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격인 덴마크 경쟁소비자위원회(Konkurrence- og Forbrugerstyrelsen·DCC)는 1월30일 이런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팔크를 경쟁법(konkurrenceloven) 위반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팔크는 경쟁자를 밀어내려고 2014~2015년 대외홍보부서를 동원해 ‘마스터 플랜'(masterplan)을 추진했다. 홍보대행사 어드바이스(Advice) 등이 팔크를 도왔다. 우선 소셜미디어(SNS)에 비오스에 부정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남부지역 구급차 매니저가 설립한 것처럼 꾸몄으나 사실은 팔크가 홍보대행사를 통해 만들었다. 홍보대행사는 해당 커뮤니티에 팔크에 유리하고 비오스에 불리한 기사를 퍼나르며 공유하라고 부추겼다.
여론전은 소셜미디어를 넘어 언론계에서도 진행됐다. 비오스에 나쁜 평판을 심어 구급차 운전자를 고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팔크에 사주받은 홍보대행사가 다수 기자에게 익명으로 비오스에 부정적인 정보를 제보했다. 조사에 참여한 덴마크 경쟁소비자위원회 야콥 뮐러(Jacob Schaumburg-Müller) 부위원장은 “팔크가 제보를 받은 사람과 독자가 기사의 출처로 팔크를 의심하기 어렵게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팔크의 입장을 대변하는 소위 ‘홍보대사'(ambassadører)도 동원했다. 소셜미디어에 비오스에 나쁜 정보를 공유해 구급차를 이용해야 할 환자와 환자 가족과 친지가 비오스를 구급차 사업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 결국 시장에서 퇴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팔크 내부 직원한테도 비오스에 부정적 시각을 심었다. 여론전으로 만든 기사를 직원 뉴스레터에 다시 실었다. 직원이 비오스로 이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팔크는 비오스가 구급차 운영권을 손에 넣더라도 구급차 운전자를 팔크에서 빼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오스가 일할 만한 곳이 아니라는 여론을 안팎으로 만들어 둔 덕분에 팔크는 최대 경쟁자를 업계에서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노동조합도 여론전에 협조했다. 팔크 노조 간부들은 운행 지역 상점 점원과 소방관 등을 만나 경쟁사에 불리한 여론을 확산했다.
위원회는 팔크가 몰래 벌인 여론전이 비오스를 덴마크 구급차 시장에서 퇴출한다는 목표에 시종일관 종합적으로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시장 과점한 팔크, 연간 255억 원 추가 수익 누려

덴마크 국가보건연구분석센터(Nationale Forsknings- og Analysecenter for Velfærd·VIVE) 소속 보건경제학 교수 야콥 키엘베르(Jakob Kjellberg)는 <DR>과 인터뷰에서 “팔크가 꿀단지를 안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이 없는 탓에 팔크에 구급차 운행을 맡긴 지자체가 최대 10%까지 비용을 더 치른다고 분석했다. 연간 1억5000만 크로네(255억 원)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실제로 비오스가 입찰에 나선 당시 제시한 비용은 팔크보다 16% 낮았다.
 

혁신부 장관 “처벌 강화할 것”, 팔크 “이제 우리 달라졌다”

팔크 스캔들(Falck skandale)이 드러나자 덴마크 사회에서는 부도덕한 구급차 운영사를 퇴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팔크에 구급차 운행을 전부 혹은 일부 맡긴 5개 광역단체는 팔크 스캔들을 계기로 구급차 사업을 민간에 위탁하지 않고 직접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비오스가 파산하자 남부 지자체는 구급차 운영권을 인수하고 비오스에 보상금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팔크가 경쟁법 위반으로 처벌받더라도 당장 큰 타격은 입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자체와 계약이 5년 단위인데, 현행법으로는 불법을 저지른 업체가 정부 조달사업에 입찰이 금지되는 기간이 2년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계약을 맺은 지자체에서 수익을 거두며 입찰 금지 기간을 견디면 처벌 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소피에 뢰데(Sophie Løhde) 덴마크 혁신부 장관은 “현행법이 너무 느슨하다”라며 처벌 수위를 높이겠다고 <DR>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업체가 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정부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공공입찰에서 배제되는 기간도 연장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기업이 유죄 판결을 받고도 정부 기관과 계약대로 계속 일할 수 있다면, 아무 일도 없는 것과 진배없지요. 제 생각엔, 모든 덴마크 국민이 모욕 당한다고 느낄 겁니다.”
최근 덴마크에서는 정부와 계약한 큰 기업이 처벌 받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덴마크 최대 상업은행 단스케뱅크(Danske Bank)도 에스토니아 지사에서 대규모 러시아 비자금이 세탁되는 정황을 알고도 묵인한 혐의로 수사 받고 있다. 덴마크 정부는 단스케뱅크와 계약을 해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아주 심각한 범죄로 유죄 선고 받은 기업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기업이 공공부문에서 수주한, 마치 아무 일도 없던양 계속되는 사업도 많죠. 중범죄로 처벌 받은 기업과 계약을 끝낼 방도를 모색해야만 합니다.”
야콥 리스(Jakob Riis) 팔크 최고경영자(CEO)는 법이 강화되도 상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재가 더 강화돼야 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지금 팔크는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그 사건은 2014년과 2015년에 벌어졌으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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