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16]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보다 ‘Between Walls’

“아빠, 유치원에 가기 싫어요.” “아빠, 이가 빠졌어요.”
딸이 아버지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아버지는 마지못해 기계적으로 답한다. 그는 집필 중인 소설 생각에 바쁘다. 자기 일에 파묻혀 딸을 무시하는 모습에서는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평소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던 나는 딸에게 깊이 몰입했다. 딸에게 무심한 아버지를 보니 지난 상처가 쓰라렸다. 감독이 나 같은 사람일 것만 같았다. 인터뷰를 청했다. 아버지와 딸의 거리감을 담은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Between Walls>를 만든 사라 예스퍼슨 홈(Sara Jespersen Holm) 감독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아버지는 감정 기복이 심한 분이셨어요. 저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았죠.”
홈 감독은 어릴 적 이런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이 들고서야 아버지가 자신과 같은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 작품을 만들며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스스로 치유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이 작품을 ‘테라피 영화(Therapy Film)’라고 불렀다.

사진: 안상욱
‘Between Walls’ 감독 사라 예스퍼슨 홈(Sara Jespersen Holm) (사진: 안상욱)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하얀 새’와 ‘검은 새’는 두 주인공 곁에 머문다. 새는 직접적인 상징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처럼 하얀 새는 평화와 순수함을 상징해요. 검은 새는 반대죠. 검은 새는 부정적인 것 주위에 머물죠.”
영화 끝에 이르면 늘 아버지 곁에 머물던 검은 새가 딸과 친해진다. 나는 딸의 순수함이 아버지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배드엔딩 같았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는 한층 깊었다.
“인생에 빛만 가득할 수는 없어요. 삶은 어둠과 빛의 순환이죠. 어둠이 있어야 빛이 보이니까요. 아버지가 딸의 인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무조건 배드엔딩은 아니라고 봐요.”
나는 항상 인생의 밝은 면만 보려 애썼다. 인생의 그림자조차 빛의 일부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내 인생관을 뒤흔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됐다. 인생을 있는 그대로 즐기려면 내 안에 어두운 면까지 인정하고 끌어 안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8분짜리 짧은 영화지만 여운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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